어머니를 멀리 보내야하는 날
김동균
2001.07.17
조회 42
7월18일이 어머니 49제인데, 극락에 가시기전에
사연을 들려드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보냅니다.
어머니는 올해 66살로 자궁내막암으로 5월 31일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아시게되면 충격을 받으실까봐 마지막까지 어머니에게 암이라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작년 11월에 암검사를 받고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그랬지요.
어머니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91년 유방암으로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셨고, 96년에는 자궁경부암 2기진단을 받고 방사선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전에 수술한 경험이 있고, 항암치료를 했기 때문에 체력이 약해서 수술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밤마다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이대로 어머니를 보낼 수 없다고....
어머니는 방사선치료를 받으면서 먹기 싫은 밥도 억지로 드시고, 약도 정확히 시간 맞춰 드셨습니다. 나중에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죠. 그때, 가족들 모두 힘들었었고, 노력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아 환자 가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여성시대에 사연을 보내려고도 했었습니다. 결국, 글재주가 없어서 다 적어놓고 보내지는 못했지만요....
저는 올해 대학졸업해서 안정된 회사에 입사해서, 이젠 집안에 아무걱정 없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3월에 어머니가 갑자기 식욕이 없어지고, 배가 불러서 메리놀병원에 갔더니 내시경 검사를 하자고 하더군요. 결과는 별 문제가 없다고해서 안심했었는데, 점점 상태가 이상해지는거 같아서 입원해서 MRI검사를
해보니 배에 복수가 차고, 자궁내막암 말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얼마나 많이 하셨기에, 암을 3번씩이나 걸리고.... 결국은 말기까지 되고....
그 동안 고생만 하시고, 이제 편안할 일만 남았는데....
저는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담당 선생님을 찾았는데, 그때가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수술중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계속 기다리니까 급히 또 다른 수술이 잡혀서 수술실에 있다고 하더군요. 나중에는 수술이 끝난 후 모임이 있어서 바로 그곳으로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담당 산부인과 과장이 메리놀병원 원장 이였습니다. 어머니가 항상 고마워하던 그 원장님.
11월에 검사받았을때는 아무 이상 없었는데, 갑자기 암세포가 퍼진거라고하고. 화가나서 미칠 것 같았지만 어머니를 살리는게 우선 이였기에 다른 생각은 나지도 않더군요. 일본의 큰 병원에 사진을 가져가 보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봐도 대답은 다 똑같았습니다. 방법이 없다고. 있다면 항암치료뿐인데, 의미는 없고, 단지 생명을 조금더 연장할 뿐이라고.... 하지만, 환자에게는 고통만 더 안겨줄 뿐이라고....
주위 사람들은 민간요법을 해라, 그래도 항암치료를 해라, 본인에게는 알려라, 알리지마라.....

결국, 어머니를 서울에 있는 원자력병원에 모시고 가서, 항암치료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항암치료를 하기도 전에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서, 모든게 물거품이 되었고, 더 이상의 방법도 없게되었습니다. 이제는 임종 때까지 편안히 모셔야 겠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살리려는 욕심은 버리고, 어머니가 항상 편하게 생각하는 메리놀병원으로 다시 모셔왔습니다. 그 병원에 다시는 안 오고 싶었는데....
나중에는 새로운 의사가 어머니를 담당했고, 어머니한테는 계속 그 사실을 비밀로 했지요....
달마도가 좋다고 하길래, 김천 직지사에 계시는 스님한테 한 장 얻어와서 병원에 걸고, 상황버섯이 좋다고 하길래 안동에 가서 구입하고, 사각 모양의 무공해 수박이 있다고 하길래 그것도 구입하고.... 인터넷이고, 책이고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고, 가족 모두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물론,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는 며칠 뒤에 돌아 가실 줄만 알았는데,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담당 선생님이나 간호사들도 "이런 경우가 없는데..."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면서 계속 애를 많이 써 주더군요.... 참, 고마웠습니다.
어머니는 누나들한테 양력으로 5월 29, 30일에 저승 가기 좋은 날이라고 하면서, 그때 할머니가 자기를 데리러 올거라고 하시더니, 결국 5월 30일 새벽에 우리들을 남기고 하늘로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우리들에게 자기가 죽으면 절대 울지 말고 "관세음보살"을 하라고, 입버릇처럼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울면 그 소리가 새 소리로 들리고, 그러면 이승에 미련이 남고, 힘이 들어서 저 승갈 때 편하게 못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바램이였기에 우리는 큰소리로 울지도 않고, 눈물만 흘렸지요.
암 말기 환자들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는다고 하던데, 어머니는 진통제도 한번 안 쓰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셔서 그나마 위안이 되더군요. 7월 9일은 어머니 생일 이였는데, 케이크르 하나 사 놓고, 생일상을 차렸는데, 여자친구 꿈에 어
머니가 한복을 곱게 입으시고, 케이크를 드시더랍니다.
누나들은 가끔씩 꿈에 어머니를 만났다고 하던데, 저는 만나려고 해도 잘 안됩니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할말도 많고, 용서바랄것도 많은데....
집안을 정리하다보니, 어머니가 신었던 구멍난 양말, 절에 갈 때 쓸려고 모아놓은 빳빳한 돈.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이 하나씩 보일 때마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던군요.
효도라는 건 정말 기다려 주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못해드렸던건 아버지한테 다 해드릴 것을 어머니께 약속 드리며 이만 마무리하겠습니다
조용필 그리움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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