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하루
김선은
2001.07.20
조회 16
오랜만에 저는 군대 동기들을 만나러 신촌으로 나갔습니다. 너무 반가웠고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타면서 지갑을 찾아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던 지갑이 온데간데 없어졌더군요.
너무 당황했지만 버스 기사님에게 공손히 인사를 하고 양해를 구하자 기사님도 제 표정이 너무 불쌍해 보였는지 공짜로 태워 주시더군요.
돈은 별로 없었지만 그 안에는 주민등록증을 비롯하여 학생증, 신용카드등 중요한 물건이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집에와서 풀이 죽어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지갑을 화장실에서 주었다고 하면서...
저는 너무나 반갑고 기분 좋아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 하며, 그 다음날 아침일찍 그 아저씨의 회사로 찾아갔습니다.그 아저씨께서는 저를 보시더니 커피까지 대접해 주시며 더운데 오느라 수고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분의 친절에 저는 감격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습니다. 그 아저씨가 도어자동시스템 그러니까 열쇠가 아닌 번호를 누르면 현관문이 열리는 장치를 판매하는 회사를 운영하시는데 지갑을 찾아준 대가로 하루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대학생이 선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면서...약간 치사한 기분은 들었지만, 지갑을 주어준 고마운 분이니까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5시간 동안 열심히 아파트를 돌며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일이 끝나고 그 아저씨께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는데 한가지 부탁만 더 들어주라는 거였습니다.
그 아저씨 아들이 올해 고3인데 아들이 지갑을 찾아준걸로 해서 경찰서에 신고를 하면 학교에서는 선행상을 주고 대입가산점이 붙는다는 거였습니다. 좀 너무한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꾹 참고 경찰서까지 가서 서류까지 작성해 주었습니다. 지갑을 찾아준 그 아저씨가 처음엔 너무 고마웠으나, 나중엔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고, 좋은 의도로 만든 사회봉사나 선행을 했을때 가산점을 주는 교육제도가 이렇게 잘못 사용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언타이틀의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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