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금부터 저희 아버님을 생각하며 글을 올립니다
벌써 작년 2월이군요 아버님께서 자주 피로를 느끼시고,눈에 초점이 잘 맞지를 안는다고 하시더라구요
연세도있고해서 혹시 중풍이 오는건 아닌가해서 몇일동안 침을 맞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침만 맞으러 다닐께 아니라 검사를해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후 담당의사분께서 어머니와저를 조용히 부르시더군요 저와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줄 알았습니다 뇌종양 같으니 큰병원으로 가보라더군요
급히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예약을하고 이틀후에 병원에 입원을 하기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님은 집을 나서시면서 동네분들에게 2주후에 내려오시겠다고
큰소리를 치시더라구요 근데 그게 마지막이될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1주일동안 검사후 악성종양같으니 빨리 수술을 하자더군요 어쩔수없는 결정을 해야했습니다 수술전까지 아버님께서는 단순한 물혹 정도로 아시고 수술실로 향하셨습니다 근데 그게 당신 발로 마지막 걷는 걸음이 될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첫수술후 이틀동안은 경과가 너무 좋으시더라구요 의사분이 이 상태며는 한달정도면 들어올때와 마찮가자로 걸어서 퇴원하게 될꺼라고.. 근데 3일째부터가 문제였습니다 계속상태가 악화돼 3일 간격으로 수술을 3차례나 받으셔야 했습니다 사람 머리속을 3번씩이나 건들어 놨으니 멀쩡하시면 이상한거죠 그후 한달만에 코에 식사 튜브를 꼽고,목엔 가래를 빼기위한 구멍을 뚫으시고 준중환자실로 나오시게됐습니다 그때부터가 고생길이었죠 어머니 혼자서는 아버님 몸을 가눌질 못하시니 제가 같이 있을수 밖에요
의식도 없으신 아버님을 매일 목욕을 시켜드리고 대변을 받아내고 편히 앉자서 쉴 시간도 없드라구요
그때부터 병원생활이 1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방사선 치료에다 수술도 무려 4차례나 더 받으시면서요
작년 여름하고 초 겨울쯤엔 정신이 조금은 돌아오셨었거든요 그 기간이 채 1달씩도 안됐지만은...
정신이 들으셨을때가 생각 나네요 제가 밖에 나가 있는데 어머님이 전화를 바꿔 주시더라구요 그때 아버님이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빨리와라"그러시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구요 하루는 어머님이 시골 집에 내려가셨는데 아버님께서 그 희미한 정신으로도 병실에 누가 들어오면 가누지도 못하시는 몸으로 문쪽을 돌아보시는거예요
어머니도 거의 눈물로 병원생활을 하셨죠 하지만 어머님을 챙겨드릴 겨를이 없더라구요 없는 형편에 1년넘게 병원생활 하느라 힘도 많이 들었죠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주셔서 그나마 버틴거죠 작년 8월 태풍이 불때였어요 집에 다녀오시던 어머님이 병원현관앞에서 차에서내려 걸어들어오시는 순간 병원 셔틀버스 간판이 바람에 쓰러지면서 어머니 발등을 찍은겁니다 병실에서 연락을받고 응급실로 내려가서보니 발등이 절반은 팽겼더라구요 병원측에선 수술과 입원치료를 해주었지만 아직도 불편해 하십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버님이 그렇게 누워계시는데 어머님까지 옆 병실에 누워계시니
정말 안되는일만 생기더라구요
이번 4월 어느날 새벽에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셔서 집으로 모셔야되는데 계산을 안하면 아버님 시신을 못내준다는거예요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장례후에 계산하겠다는데도 안된다더라구요 어머님이 그 와중에 무릎을 꿇으시고 애원하는데도 안된다더라구요 얼마나 원망스럽던지요 아버님 때문에 큰소리도 못치겠더라구요 근데 같은 병실에 얼마전에 들어오신분이 선듯 계산을 해주시는겁니다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못있겠더라구요
지금도 생각하면 의식도없는 아버님을 휠체어에 모시고 물리치료 다니던 생각...
수술 결정을 아버님께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한것도 후회가 되구요 병원에 계실때 모습들이 문득 문득 떠올라 어머니와 저를 울리곤 한답니다
아버님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습니다 무디 고생하신 만큼 좋은곳에서 편안히 계시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그동안에 일들을 절반도 쓰지를 못한것 같네요 두서없는 글 읽어구셔서 감사합니다
폐이지 너에게 보내는 추억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