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띄우는 편지
강소정
2001.08.18
조회 13
할머니.
햇살이 너무 뜨거워요.
덥지는 않으세요? 맞아, 할머니는 더위보다는 추위를 더 많이 타셨는데... 친정집이 오래된 주택이라 위풍이 심해서 할머니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주무셨었지요
작년 겨울이 시작할 즈음, 할머니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드리며 그 해 겨울은 그래도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위로했었는데...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던 지난 11월.
그때도 토요일이었지요. 아빠 생신 선물을 챙기며 빨리 친정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점심은 준비도 하지 않은채 남편이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때마침 걸려 온 전화 한통.
"할머니 돌아가셨어" 라는 동생의 말.
"어떤 할머니"냐고 물어 보자 "우리 할머니"라는 동생의 말이 믿기지 않아묻고 또 묻고...정말 그 흔한 표현대로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소리내어 울었지요. 창 밖의 하늘을 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분명 하늘로 가고 계실텐데....우리 고운 할머니.
우리 가족이 친정에라도 갈라치면 가게일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시고 내 남편과 아들이 식혜를 좋아한다는 걸 아시고 늘 맛있게 만들어 놓으셨던 할머니.
내가 첫 아이를 출산할때도 마음 편하게 친정에 가 있을 수 있었던건 할머니때문이었는데...내가 둘째를 낳을때도 몸조리 해주시겠다던 약속을 뒤로 하신채 나의 둘째가 뱃속에서 4개월되었을때 할머니는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나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몰라요.할머니가 안계신 친정은 나에게 아무 힘도 되어주지 못했어요. 첫 아이는 친정에서 낳았으니 둘째는 시댁에서 낳으면 안되겠냐는 엄마의 말씀이 왜그리도 서럽게 들리던지...
할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남편은 우리 둘째 아기는 울보되겠다고 했는데...할머니가 안계시다는 이유로 몸조리를 어디서 해야할지 결정을 못내리고 매일 걱정하자 아빠와 여동생이 나섰어요.그래서 둘째 낳을때는 할머니를 대신해 아빠와 동생 현정이가 몸조리해 주었어요.아빤 할머니께서 내년에 심는다며 준비해 놓으셨던 콩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나의 몸조리를 도와주시면서도 틈틈히 집 뒤에서 뭔가 하시더라구요. 저번에 갔더니 남의 밭 옆에 아빠가 아주 작은 밭을 만들고 콩을 심어 놓으셨더라구요. 또 귀퉁이에서는 고추가 자라고...아주 조그만 밭을 일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빠의 모습이 어쩌면 할머니와 그렇게 똑같아요?
할머니. 벌서 둘째가 백일이 되었어요.
"정말 장하다. 참 잘 키웠구나" 하시며 내 손을 덥썩 잡아주실것만 같은데...예쁜 딸 할머니 품에 안겨드리고 싶었는데...두 아이 키우는 엄마로써 출산 후유증으로 고민 많은 주부로써 할마니께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은데...그래도 마음으로 느껴요.할머니가 늘 옆에서 격려해 주고 있음을...
할머니.
우리 가족 꼭 지켜보세요.우리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시고 크게 웃어 보세요.
할머니의 고운 얼굴이 떠올라요.
할머니 우리 가족이 할머니 많이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 아시죠?
우리 가슴속에 언제나 사랑과 관용의 힘으로 있으시길 바래요. 사랑해요. 영원히...
파파야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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