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엄마 이야기를 할까 해요..
많이 부족한 글솜씨지만..엄마 이야길 쓰라고 하면 누구보다도 죄송함도 많고, 여러모로 할말이 많은 딸이네요..
전 22살에 결혼했어요..그러니깐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이라곤 채 1년도 되지 않은 나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 또 한 번의 짐을 드리고 간거죠.
그땐 지금의 신랑만 눈에 보였어요.
어린 저를 달라던 신랑에게 우리집에 오면 바닷가에 빠뜨릴 거라고 엄포까지 놓으신 아버지..참고로, 저희집은 우리나라의 남쪽 바닷가랍니다. ...나이차도 많고, 신랑과 학벌차도 심했고..제가 너무 힘들거라고 엄마며, 이모며.. 모든 사람들이 말렸음에도 올해 1월 결혼을 하고 말았답니다.
결혼하면 정말 행복의 나날이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암말기 진단을 받으셔서 수술은 잘 되었지만, 지금도 서울과 고향집을 오가며 치료를 받으시고 계세요.
엄만 남쪽 바다앞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시는데..우리 4남매 걱정, 아버지 걱정...이런 저런 걱정으로 식사도 제대로 못하셔서 엄마마저도 약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답니다.
아버지 건강이 안좋으니까 아버지 걱정은 물론이고,,새벽 3시에 일어나셔서 식당 문열어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낚싯배 도시락싸시고 주무시는 엄마 걱정에 서러울 때가 많아요.
엄마는 그래도 저한테 그러세요..
시집가면 신랑이 보살피니 걱정안할 줄 알았는데, 제일 걱정되는 사람이 저라구요..
전 시집오구서 아프기도 많이 아팠어요..7개월 살았는데도 왜 그렇게 아픈게 많았는지..
병원의사의 오진으로 아기를 못가질 것이란 말까지 듣구서 정밀진단에 약에..저까지 병원왔다갔다 하구 말았지요.
그때 엄마는 병원에 누워계시는 아버질 뒤로하고, 저한테 뛰어오시더라구요..전 걱정끼쳐드리고 싶지 않아 아버지 병원하곤 아주 먼 곳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말이예요.
엄마한테 걱정만 더 끼쳐드리는 딸이 되어버렸네요.
결혼전엔 그렇게도 자주자주 전화를 하시던 분이 사위 어렵다고 전화도 못하시고..제가 가끔씩 전화드리면 제 목소리듣고 싶으니 전화좀 자주 하라구..그러는 분이세요..
우리 엄마 , 아빤 전형적인..그러니깐 tv에 나오는 농촌<전원>드라마보다도 더 구세대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세요.
서울에서 사는 우리는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는 밤이면..집에 들어왔나 계속 전화해서 들어오는 거 확인하구서 주무시는 분들이세요.
시집가서 자기하고 똑같은 자식 낳으면 부모마음 안다고 누가 그랬던가요..하지만 전 아직 절 닮은 자식도 없는데..우리 엄마의 인생이 왜 그렇게 서글프게만 다가오는 걸까요.
우리 엄마 인생을 제가 함부로 이렇다저렇다 ..할 수 없겠지만, 확실한건..전 죽어도 저희 엄마처럼 참으면서..희생하면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거예요.
저희 엄마 아빤, IMF때 금모으기 운동한다고 손에 끼고 계신 금반지며, 시계며 모두 파신 분들이세요.
그때 대학생이 저희 집에 셋이었는데, 물론 저희들한테 다 들어갔겠죠.
제가 직장생활 오래해서 그 금반지를 다시 돌려드리고 시계도 돌려드리고 했어야 했는데..결혼하구서 엄마, 아빠한테 못해드린게 많아서 참 서운해요...
저...엄마 마음 다 헤아리진 못해두..엄마 바램대루 우리 신랑 위하면서 잘 살거라구요..
그리고 저희 엄마 , 아빠 소중한 마음 간직하고, 조금씩 보답하면서 살거예요...
서지원의 초코렛과 장미

남쪽 바닷가앞 우리 집으로 보내는 행복 한아름!
조혜선
2001.08.18
조회 19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