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서는 늘 비누냄새가 났다
최미정
2001.08.19
조회 45
제 고향은 순창의 두메산골입니다.
책이라곤 교과서외에 엿장사가 엿팔 때 싸준 종이외에는 도대체 구경도 할수 없을 만큼...
심지어 화장지가 귀했던 그때 학생이 많았던 우리집에 휴지대용의 헌책 한권 얻어 가려는
동네할머니들이 줄을 이을만큼... 책이 귀했던 두메산골...
저보다 7살 많은 맨위 큰오빠가 사고를 쳤습니다.
학교 교문 앞으로 찾아온 야바위꾼 책장사에게서 한국단편문학전집이란 12권짜리 책 1질을 산것이었죠.
전 그때 야바위꾼이란 단어를 처음 접했고 오빠가 사온 책은 한달여간 시렁위에 박스채
숨겨져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뭔가 읽을 거리에 목말라 했던 저로서는 꿀단지가 숨겨져 있는양 시렁위의 책박스를 향해 뜨거운 눈길을
보내고 있었고 결국 오빠는 제게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고... 그때 전 겨우 10살이었답니다.
그때 오빠에게서 들은 돈의 액수는 정말 어린 제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커보였고...
교과서값 대기에도 빠듯한 우리 살림에 오빠가 큰일을 저릴렀군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책값을 깨를 팔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머니 큰오빠 저...
고추잠자리가 날아 다니는 가을들녘...
들깨를 털때는 왜 남의 묘앞에서 털었는지...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군요.
그이후 그책은 제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었고...
거기서 제가 가장 가슴아파했던 느낌은 강신재님의 젊은느티나무였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일종의 연애소설인데
어떻게 10살인 제가 그 애닯은 마음을 이해했는지 알수는 없으나... 그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그 마음은
아직까지도 기억이 됩니다.
젊은느티나무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에게서는 늘 비누냄새가 났다.
저 이 문구를 제가 결혼한 남자에까지 적용시켰을
정도로...늘 그 한마디가 제맘을 사로잡고 있었답니다.
그에게서는 비누냄새가 났다.
아.. 얼마나 상그러운 느낌이었던지.
여기서 그란 어머니와 재혼한 새아바지의 아들...
즉 의붓오빠였고...
둘은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며...
서로 안타까운 마음들을 교차하는데..
그때 이 상황을 피해 느티나무가 있는 어느
시골로 가서 휴양을 취하고 있을 때...
그 느티나무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오는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그녀가
사랑하는 오빠라는 이름의 현규였답니다.
결론은 둘이서 미국으로 도망을 가자 했던가...
아니면 오빠 동생으로 잘 지내기로 했던가 기억은 없지만
세로줄의 그 칙칙한 종이냄새가 나던 그 책의 느낌과...
그 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가을 저녁에 깨를 털던
어머니와 저... 그리고 오빠의 모습이 늘
제 마음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웠답니다.
옛생각을 떠올리며......
신화의 너의 곁에서 (Forever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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