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저 왔어요. 별일 없으셨죠? 늘상 이렇게 친정에 들어섰지만 오늘은 말투부터가 난 응석받이로 딸로 변합니다.
"아부지 둘째딸 우리 아부지 보고싶어 왔는데 아부지도 저 보고싶었지?
어디 우리 아부지 손좀 잡아볼까 .. 괜스레 수선을 떨며 들어섭니다
집아래 차를 세우고 클렉션을 두 번 빵빵 거리면 아버지
창문을 열며 우리를 오는 것이 반가워 내다 보고 계시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버지의 창문 사이로 아버지를 볼수 없습니다. 오늘 역시 아버지는 누워서 손주들의 인사를 받고 우리에게 미소로만 반기십니다.
동네에서도 우리 아버진 세상에 법 없이도 살수 있다는 분이셨습니다.
외아들이신 우리 아버지는 전쟁당시 서당 선생님이신 할아버지께서 잠시 너 혼자만이라고 일단 피해 있으라고 하신 것이 영영 부모님과 가족과 헤어지는 이산가족이 되셨지요. 휴전이 되고 강화에 정착을 한 아버지는 정미소에 취직을 하시고 다행히 좋으신 양부모님을 만나셔서 지금의 가정을 만들셨지요.
말씀이 워낙 없고 표현력이 없으신 아버지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늘 눈에 베어 있으셨는데. 지금와 생각하니 그리움과 외로움을 술로 많이 달래신 것 같습니다.
벌써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늦은 시간 친정엄마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쓰러지신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지요.
술로 인한 것인지 간기능이 손상될때로 손상이 되어 회복이 어렵다고 의사선생님은 보름간 치료를 중단하시고는 퇴원을 권유하셨습니다.
며칠을 못 넘길 것 같으니 모시고 나가나구요..
아들이 없고 딸만 넷인 우리집 언니의 늦은 결혼에 둘째인 제가 먼저 결혼을 해서 남편은 친정에 더없이 큰 역할을 했지요. 엄마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제 남편께 " 여보게 어쩌나 아버지를 모시고 나가라는데..
하는 소리에 제 남편은 어머니께 용수철이 튀어 나오듯 안됩니다. 아직 아버님께서 하실일도 많으시고 출가한 딸도 셋이나 있는데 저렇게 보내드리면 말도 안된다고 해 보는데 까지 해 보아야지 그냥 모시고 나가랜다고 나가면 안된다고 다시금 의사선생님께 매달렸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나요. 아버지는 아직까지 우리곁에 계시고 딸넷이 다 출가시키고 가정을 꾸며 아들손주 다섯, 딸손녀를 두셨으니 하늘이 베푸신 천명이라고 주위에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런 아버지가 이제 팔순을 바라보시며 자꾸만 자꾸만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힘들어 하십니다. 아버지를 보살피시는 어머니 역시 혼자서 수발을 들고 계시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죠
젊어서부터 어머니 지극정성으로 아버지께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먼지가 많은 정미소에서 일을 하신다고 그 어려운 살림에도 기름기를 드셔야 한다고 없는 살림에도 가장이 건강해야 한다고 닭을 푹 고와 드리고는 자식에게 까지 줄것이 없는 어머니는 닭이 다 고와질때쯤이면 우리보고 놀러 갔다 오라고 하십니다. 마음은 아프시지만 자식까지 먹일것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땐 왜 그리 그 닭고기가 먹고 싶었을까요 눈썹까지 먼지가 뽀얗게 되신 아버지께서 방안에 들어가시지도 못하고 툇마루에 걸터 앉아 기름이 동동뜬 닭고기를 드시는 아버지를 숨어서 보고 있다가 조금만 남겼으면 하는 철없는 생각도 했쓰니까요.
그렇게 열심히 사신 우리 아버지
이제 그 기력조차 차리지 못하시고 저리 누워만 계십니다.
아버지 오늘은 엄마랑 목욕하지 말로 저랑 목욕해요 너무 누워만 계시니까 욕창이 생긴거예요.
제가 씻어 드릴께요 했더니 역정도 없이 저의 손에 이끌어 욕실로 들어오시는 아버지 다큰 자식에게 당신의 몸을 보인다는 것 조차 이제는 별 의미가 없으신 듯 합니다.
앙상하게 뼈마디만 남고 욕창이 생긴 부위를 보며 난 그만 눈물을 뚝뚝 아버지 등으로 떨어뜨리고 자꾸만 내 스스로를 자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아버진 나의 뜨꺼운 흐느낌과 눈물을 당신의 몸의 물기가 믹서되어 흐르는 것을 느끼셨을 꺼예요.
간신히 고무함박을 의지한체 몸을 맡기신 우리 아버지..
겨우 목욕을 시켜 드리고 방안에 모시고 와 옷을 갈아 입히고 료션을 듬뿍 발라드리고 욕창난 부문에 약을 발라드리고 사탕을 하나 까서 아버지 입속에 넣어 드리며 아부지 개운하지 했더니 미소만으로 또 응답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 평생 힘들게 살아오신 흔적이 보이는것 같아 자식 마음에 멍이 들어만 가나봅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철이들고 무심히 넘겼던 아버지의 술내음 속에서 아버지의 쓸쓸하고 외로움의 삶의 무게가 실려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지요.
그토록 가 보고 싶어 하셨던 고향땅을 가보지도 못하시고 지금와 생각해보니 말씀이 없으신 것이 아니고 아버지 고향에 두고온 그리움으로 말문이 막힌 것인 것 같아 더욱더 내 가슴이 칩니다. 저역시 아흔을 바라보시는 시어른 두분을 다 모시고 사는 외며느리 입장이라 사는데 급급해 친정 아버지께 그리 살갑게 챙겨 드리지 못한 것이 이내 한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작년 제남편과 아버지 이산가족 신청을 해놓고 아버지 참으로 기대를 많이 거셨어요. 혹시나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해서요 기회가 우리 아버지을 외면했지요..
딸들이 용돈을 드리면 특별히 쓸대가 없으신 아버지는 늘 이 돈 모아 고향갈 때 차비로 쓰시겠다구요.
지금 아버지의 상태로는 배 타는 것은 무리이고 내년에는 육로로 금강산을 갈수 있다고 하는데 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을 보여 드릴수만 있다면 더없이 감사할텐데 하루가 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만 목이 메입니다.
우리 아버지 제발 정신 놓지 마시고 기운 차리셨으면 하는 마음 너무 간절하기에 두서없이 이 글을 써봅니다..
조정현 처음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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