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마누라 도 가을저녁놀때문에 가슴이 젖을까요?
민채린
2001.10.06
조회 30
살아 가면서 사랑을 배운다.
미혼시절엔 작은 수첩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 놓은 워즈워드의 싯귀처럼 아름다운 것이 사랑인줄 알았다. 사랑이란 너무 흔해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싸구려 비닐우산같이 망가지기 쉬운 것이라고 해도 내 사랑만은 심산유곡에 숨겨진 한송이 꽃처럼 귀한 것이라 믿었다.
신혼초엔 흐린 불빛아래 엎드려 콩나물 오백원 두부 육백오십원 생활의 숫자를 적어 나가면서 그것이 비록 빨간색 볼펜으로 마무리지어야 되는 적자 가계부일지라도 사랑때문에 마음이 부자인 나는 행복했다. 어디 그뿐인가, 늘 우산장수처럼 비오기를 기다려 퇴근시간에 맞춰 우산을 들고 버스정류장으로 남편 마중나가는 나의 발걸음은 행복으로 다가가는 걸음이었다. 사랑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풍부한 자원이라는 것을 그 시절에 알았다.
몇년전 가을에 담석증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마침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끼여 있었다. 나는 결혼기념일이 주는 레몬빛 설레임을 안고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퇴근해서 들어온 남편을 보고 저으기 실망했다. 남편의 손에는 빛깔 고운 포장지로 싸인 선물상자대신 신문지로 둘둘 말은 작은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그거 뭐예요?"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남편은 "선물이야, 선물" 하면서 신문지를 풀었다.
아, 거기엔 하늘빛을 그대로 닮은 옥색 고무신 한켤레가 들어 있었다.
"당신 퇴원할 때 신고 가라구, 저 뾰족구두를 신으면 불편하잖아."
남편은 내가 입원할 때 신고 들어 온 까만 에나멜 구두를 가리켰다. 가슴이 뭉쿨했다.
올 어버이날 처음으로 초등학교 이학년생인 딸아이한테 선물을 받았다. 학교앞 문방구점에서 샀다는 동전지갑이었다.
"엄마, 이 빨간 동전지갑에는 오백원짜리랑 백원짜리 동전을 넣고 이 노란 동전지갑에는 십원짜리랑 오십원짜리 동전을 넣으세요"
딸아이는 친절하게 용도까지 가르쳐 주었다.
"그래. 동전을 찾으려면 온통 핸드백 안을 다 뒤져야 했는데 이젠 안 그래도 되겠구나. 정말 편리하겠어"
내 말에 기쁨으로 눈빛을 반짝이는 딸아이를 보면서 사랑이란 샘물처럼 결코 마르지 않는다는 걸 확신했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사랑과 만나게 되고 그 사랑은 내게 성실하고 옳바르게 살아 가는 힘이 된다.
지금 내 핸드백안에 들어 있는 작은 수첩에는 달콤한 싯귀대신 적금붓는 날짜가 적혀 있고 분위기 좋은 찻집이름 대신 주택자금 대부받는 법이 쓰여 있어도 사는 게 피곤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사랑과의 만날 약속이 되어 있는 내일 또 내일이 있기 때문에.....


조폭마누라 이름처럼 무서우나요? 신청합니다.
신청곡 유익종 사랑의 눈동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내 복지상가1층 민피아노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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