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내는 노래 부르는게 취미입니다. 설겆이 하다가도 오랄랄라, 세탁기
돌리다가도 오랄랄라, 오페라 가수처멈 목청을 높히곤 하지요. 전 아내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재빨리 베란다에 나가 서있습니다. 왜냐구요? 제가 지금 아내를
때리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죠. 아내의 노래는 아내에게만 즐거운
노래일뿐 다른 사람들에겐 비명처럼 들리니까요."
어느 모임에서 한 남자가 쾌활한 음성으로 말했다. 좌중에 있는 사람 모두 와
웃었다.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베란다에 나가 서있는 그 남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의 오해를 산들 어떠냐 하며 베란다 대신 거실 쇼파에 파묻혀 TV
스포츠 뉴스를 보며 프로야구 우승팀을 점쳤을 것이다.
내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나는 주일날 예배시간에 목사님 설교를 눈을
감고 듣는 버릇이 있다. 그래야 집중이 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날
예배시간에 눈을 감고 들을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 옆에 할머니 한분이 앉아
계셨는데 계속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편안하게 주무시는 게 아닌가? 신성한
예배시간에 이게 무슨 해괴망칙한 소리인가? 사람들은 계속 뒤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자리를 잘못 잡은 걸 한탄하면서 내가 코를 골면서 자는
범인이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 눈을 부릅쓰고 목사님을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다. 그래서 체면을 중요시 여기게 되고 오해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이 아름다운 건 체면을 지키려는 노력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체면때문에
못하는 것이 많아서 구속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체면을 지키면서 산다는 건 결국 사회규범과 질서를 지키면서
사는 셈이니까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지름길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찌된
셈인지 <체면> 보다는 눈에 보이고 손에 꽉 잡히는 <실리>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체면? 그게 밥 먹여줘요?
이렇게 반문할 사람도 있을 지 모르겠지만 밥보다 더한걸 우리에게 주지 않나
생각한다. 바로 동물과 구분되어지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내 이웃에 결혼식을 앞둔 참한 아가씨가 살고 있는데 시누이 될 여자가 은근히
압력을 가하더라는 것이었다. 요즘은 예단으로 시어머니 밍크코트는 기본이라고.
그 아가씨는 시누이될 여자앞에 무릎을 딱 꿇고 공손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밍크코트는 겨울 한철만 따뜻하게 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효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따뜻하게 해주지요. 전 효도하는 마음을 예단으로 갖고
가겠어요."
시누이될 여자가 체면을 지키려 했다면 이런 망신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체면을 지키고 살자면 목소리 높힐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없을 것이다. 편안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체면을 지키고 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 다시 신청합니다 아직 유효한가요?
쓸쓸한 이 가을 뮤지컬 한편이 꼭 보고 싶군요
신청곡 최양숙 가을편지
최현순;555-2006 서울 강남구 대치동 현대투자신탁 개포지점

사랑은 비를 타고 아름다운 무지개 만드나요?
최현순
200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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