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의 답변입니다.
원칙대로와 법대로라는 말에 과연 인생이 원칙과 법의 울타리 안에서 규정할 수 있는 그런 것입니까
약하고 어리석기도 하고 시행착오도 하는 완성을 향해 가는 미완성의 인생들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한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죄 많은 우리의 인생들에게 오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적어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기를 바란다면
질책과 매운 채찍보다는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좌와 우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까지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가 돈 없이는 될수 할 수 없는 풍토였기에 이러한 모습들이 반복해서
보여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돈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그러한 행태가 아닙니까?
관중 동원과 행사비등등 그모든 자금이 어디서 나올수가 있습니까?
정치자금을 양성화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공정한 선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정말로 나라를 지킬 사람을 가려내는 국민의 눈이야 말로 이러한 불행의 되풀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세계가 그의 민주화를 위한 고통의 세월을
인정하여 노벨 평화상을 주었던 자랑스러웠던 우리의 대통령의 늙고 지친 괴로운 모습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지전능한 신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아닙니다. 그도 인간입니다.
그의 과오를 떠나서 그의 고통을 한번쯤이라도 돌아볼수 있어야 합니다.
시대의 탁류 속에서 오로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우뚝서 풍랑과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온
그의 지난 인생에 과연 어느 누가 그가 고통속에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릴 때 동참했습니까?
당신입니까? 나 입니까?
아니라면은 늙고 지친 그의 얼굴에 모두 벌때처럼 달려들어 치려 하기 보다는 한번 더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사태를 일으켜 국민을 도살한 사람도 경제를 파탄으로 이끈 사람도 권좌에서 내려와 너무도
떳떳이 하늘을 이고 살고 있습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다니엘 9장을 읽어 보시면 그의 신앙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단9장 20절에 "내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모두 나라를 사랑하고 대한민국의 백성된 자로 써 나라의 융성을 위한다면 이러한
다니엘과 같은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사랑에 기초한 질책이 있어야 합니다.
질책을 위한 질책이거나 비판을 위한 비판은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정치란 흑백의 논리로 가려지는 것도 아니며 인생이 항상 좌나 우로 정확히 가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겸손히 남을 질책할 때도 나를 돌아보고 진정한 나라를 위한 가슴 아픈 기도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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