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어릴적에 1
남왕진
2002.08.01
조회 53
요즈음처럼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냉장고에서 시원한 냉수 꺼내 한모금 마실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벌써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 물지개 지고 뒤뚱뒤뚱 거리며
꼬불꼬불한 논두렁길을 걸어가던 그때가 생각난다.
열두살 어린 꼬마는 커다란 물지개에 양동이 두통가득
물을 채우고 조심스럽게 일어나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언덕을 오를때면 출렁이는
양동이에서 튀어나온 물이 고무신 가득차서 발이
미끄러져 더욱 힘이 들고 어깨는 점점 아파오고 아직도
가야할길은 멀기만 하니 그냥 주저 앉고만 싶어질때도
있었다.
집이 산중턱에 있다보니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아
멀리 떨어져있는 논 웅덩이에서 매일 물을 길러와야만
했다.
어머니는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쪽손엔 빨래감을
들고서도 잘도 가시는데 왜 나의 물지개 지는 모습은
서툴고 불안해 보였는지..
부뚜막 한곳에 구덩이를 파고 커다란 항아리를 땅에
묻어놓고서 둥그런 나무로 된 뚜껑을 열고서
우리집안에 소중했던 물을 채우는게 쉬운일은 아니였다.
비가 올무렵이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논 웅덩이까지는 아마도 300m가 훨씬 넘는
먼거리였으니 바쁘게 움직이지 않으면 맑은 물을
항아리에 채울수가 없었고 그땐 어린 동생들까지
동원해서 바가지 하나 가득 물을 떠서 물기르기를
열심히 해야만 했다.
물 한 바가지로 세수하고 발씻고 걸레까지 빨았으니
제대로 씻겨지지도 않았다.
장마철엔 항아리에 채워두었던 물도 다 바닥나고 하는수
없이 논으로가 희뿌연 물을 행여나 흙탕물과 섞일까싶어
바가지를 조심스럽게 움직여 떠와야만 했다.
머슴아들만 넷이다보니 집안 정리는 항상 맏이인 내가
맡아서 했다.
비온 뒤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실개천따라 집앞으로
흘러내려서 세숫물 걱정도 없었고 밤이면 등목도
할수있어서 물지개지고 논 웅덩이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참 좋기만 했다.
가을이 되어 논에 추수가 끝나면 우물 청소도 하고
미꾸라지도 잡을겸 우물물을 다 퍼내고 물이끼도
닦아내고 돌 틈에서 기어나오는 미꾸라지 잡는 재미는
이루말할수 없었다.
미꾸라지 잡는 재미에 빠져 거머리가 다리에 붙어
아까운 피 빨아먹는줄도 모를때도 있었다.
우물청소하는 그날 저녁엔 모처럼 집안잔치가 벌어졌다.
추어탕 먹는 그맛에 우리집이 잔치집이였다.
지금은 수도꼭지만틀면 언제나 쏟아져나오는 수돗물이
있어서 편하지만 그 옛날 물 때문에 고생하던 시절이
가끔씩 그리워지기도 한다.
더군다나 냉장고엔 언제나 갈증날 때 마실 수 있는
시원한 냉수까지 있으니 미지근한 논 웅덩이 물
마실때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인 것 같다.
세월은 흘러도 추억은 남는 것. 물지개 지고
비틀비틀거리던 산골 꼬마가 어느새 마흔이 훌쩍
지난 털보아저씨가 되어 있으니 세월참 많이도 흘러 갔구나.

희망곡 : 이미숙,백영규의 그리운 추억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35-5 107호 제일정육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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