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는 지금 어디에..
남왕진
2003.01.06
조회 69
안녕하세요.
오랜세월이 흘러 갔지만 저는 잊을수 없는 두 소녀들이 있습니다.
군대생활하던 시절에 우연히 빨래하러 냇가에 갔다가 동네
친구들과 놀러온 그 아이들과 처음 만나서 인연을 맺었답니다.
연천군 은대리라는 동네에 살았던 그 꼬마 친구들이 있었기에
군대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저에게 면회까지 왔었던 그
고마운 아이들이 무척 그리워집니다.
1984년 여름 부대에 물사정이 좋지 못해서 차탄천으로 빨래
하러 갔더니 방학이라서 동네 친구들과 수영하러왔던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고향에 있는 막내동생 생각이 나더군요.
막내동생과 동갑이라서 동생처럼 귀여워해주며 어쩌다
한번씩 만나면 짧은 대화를 나누며 아쉬운 작별을 했었지요.
육상선수여서 성격이 매우 발랄하고 별명이 말괄량이
삐삐라고 불렀던 아이.
그 무렵 TV에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 주인공이
자기를 닮았다면서 좋아하던 모습이 선하네요.
머리를 양쪽으로 묶어 세운 모습이 꼭 닮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동네에서 알게 모르게 저는 형,오빠하면서
따르는 아이들이 많아졌고 저 덕분에 중대원들이
삶은 감자도 얻어먹고 때로는 떡도 얻어 먹었다는데
저는 근무시간이 맞지 않아서 구경도 못했지만...
그렇게 여름이가고 세월이 흘러 겨울이 되었고 얼음을 깨고
또다시 빨래를 하러 갔다가 썰매 타러온 아이들과 반가운
재회를 했을때에는 한층더 성숙해서 사춘기 소녀티가 제법
나더군요.
손이 시려서 눈물이 날것 같을때 어디서 구해왔는지
마른 나뭇가지와 장작으로 불을 피워 언손을 녹일수 있게도
해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겨울날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연병장에서 제설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을때 면회준비하라는 전갈을 받고
제귀를 의심했답니다.
폭설이 내리는 이 날씨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면회올 사람이
없었으니 의아해 할수밖에 없었고 누가 왔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복장을 단정하게 갈아입고 면회실로
뛰어갔더니 가끔씩 냇가에서 만났던 낯익은 두 여학생들이
수줍은지 손으로 입을 가린채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오빠 보고싶어서 왔어요"라고 하더군요.
그때까지 저는 면회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전혀 뜻밖에
찾아온 꼬마친구들이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갈곳도
마땅치 않고 걱정도 되더군요.
휴일날 쉬지도 못하고 제설작업하는 전우들의 질투어린
표정과 부러워하는 시선을 뒤로한채 아무도 다닌 흔적없는 눈
쌓인 거리를 두 아이들과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었답니다.
한참을 걸어가다 가슴에 안고 있던 노란봉투를 선물이라면서
내밀기에 받아서 보니 그 봉투속엔 맛있게 구워온
고구마 3개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책한권이 있었고
메달에 우정이라는 글귀가 쓰여진 목걸이가 예쁘게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오빠!고개숙여 내가 목걸이 걸어줄께"하길래
모자를 벗고 목걸이를 목에거니 한순간 차갑기도 했지만
가슴이 뭉클하더군요.정성이 가득담긴 메달이었으니까요.
고구마를 먹으며 부대 주위와 동네를 한바퀴 돌아오면서
저의 고향이야기며 가족이야기를 했었고 꼬마친구들은
학교에서 있었던일과 육상선수로 성공하고 싶다는 포부와
엄마,아빠없이 할머니와 살면서 느끼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말할때에는 정말 눈물이 날것 같았습니다.
눈싸움도 하면서 산골 작은 분교 운동장을 뛰어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순진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에겐 부모형제가 있어서
얼마나 큰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하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모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들었답니다.
"오빠 앞으로 면회 자주올테니 다른곳으로 가지마" 라는
부탁을 받으며 그 꼬마 친구들과 눈속에서 하루종일 헤매다가
헤어진후 얼마후에 저는 왕림리를 떠나 전방으로 부대를
옮겨 가게 되었지요.
그 아이들과 작별의 인사도 못 나눈채 떠나온후 몇개월이
지난후에 편지를 했었는데 약속을 어긴채 떠나버린 저를
무척이나 원망하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잊지말라는
부탁과 함께 보내온 사진 2장.
가장 예쁘게 나온것 골라보낸다면서 연필로 꾹꾹 눌러서
보내온 편지와 함께.
해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면 그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세월이 흐른뒤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그 아이들의 첫사랑의
대상이었다는것을.
흰눈처럼 맑고 순진했던 그 아이들의 마음을 몰라주었던
저의 무딘 감각이 얼마나 미웠을까요.
지금도 저의 편지함속에서 빛바랜 사진과 함께 남아있는
연필로 쓴 편지 몇통.
어느새 그 꼬마친구들도 30대 중반이 되었으니 세월 참
많이 흘렀네요.
행여나 만날수가 있다면 그때 진 마음의 빚 갚고 싶어요.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희망곡: 현이와 덕이의 순진한아이,진미령의 소녀와가로등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