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걸어갈 길---
결혼한 지 9년 만에 내 집을 갖게 되었다.
새로 이사할 집 근처에는 ‘금모래’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초등학교가 있고, 그 뒤쪽에는 꽤 넓은 자연공원이 있다.
비록 금모래가 깔린 강변은 없었지만, 그곳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축하해줘야 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의외다.
왜 시골구석으로 이사를 가느냐는 투였던 것이다.
늘 서울 언저리를 벗어나고픈 욕망으로 가득 차있던 내게는,
그들의 냉담함이 여간 서운한 게 아니었다.
그 냉담함 속에, 우리 가족에 대한 우려와 애정이 담겨 있음을
깨달은 것은 최근의 일이다.
고맙게도 그들은 내 아이들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들의 우려를 실감한 것은 얼마전 신문에서 보았던
한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좋은 학군으로 자녀를 전학시키기 위해 교육청 앞에서
날밤을 새우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이부자리를 품에 안은 채 거리에서 잠든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아아, 나는 얼마나 형편없는 부모인가.
어떤 친구는 내게 끔찍한 농담을 건넸다.
멀지 않아 특정지역에 있는 산부인과와 유치원 출신 동창생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그런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길은
빨리 이민을 떠나는 것뿐이라고….
친구의 뼈있는 농담을 들으면서 중국의 우언(寓言) 하나를 떠올렸다.
무척 게으른 삶을 살았던 달팽이 한마리가 문득 태산(泰山)에
오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달팽이는 곧 절망하고 말았다.
태산까지 가려면 자신의 걸음걸이로는 3,000년 이상이 걸릴 것 같았고,
양쯔강(揚子江)을 건너려면 다시 3,000년은 걸릴 것 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은 아침에 죽을지,
저녁에 죽을지 모르는 처지였다.
달팽이는 자신의 수명이 짧은 것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한 나머지
헛간 꼭대기에 올라가 스스로 말라죽었다고 한다.
불쌍한 달팽이!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다니...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팽이처럼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그들은 달팽이와 사뭇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달팽이는 생물학적 이유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었지만,
그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꿈을 포기한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불평등을 고마워할 것이다.
옆집 친구가 대통령이 되고, 장관이 되고, 법관이 되고,
더구나 그들 틈에 끼여서 한자리 꿰찰 수 있다는 꿈은
얼마나 행복한 상상인가.
하지만 나는 분수를 아는 사람이다.
내 아이를 능력(?) 있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자라게 할 생각도 없고,
조기 유학을 보낼 생각은 더더욱 없다.
나는 내 아이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라기보다는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인디언 부족의 협상 대표로 랭커스터협정에 참석했던
카나사테고는 인디언 청년들을 영국으로 유학시키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 부족의 젊은이 몇명이 당신들이 세운 학교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그들은 당신들의 학문을 공부하고 돌아왔지만 잘 달리지도 못했고,
숲 속에서 사는 방법도 몰랐으며,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낼 줄도 몰랐다.
오두막을 짓는 법도, 사슴을 잡는 법도, 심지어는
우리 말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그러니 이런 애들을 어디에 쓰겠는가. 당신들의 제의에는 감사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대신 영국의 젊은이들을 우리에게 보내준다면 잘 가르쳐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잠든 내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본다.
이 아이들이 험난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
이 소박한 희망이 무능한 부모의 지나친 욕심일까.
또 교육정책이 바뀐단다.
물론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우리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죽어가느냐,
아니면 학원에서 죽어가느냐 정도일 것이다.
<이용범·소설가〉경향신문拔取!
__윤연선/얼굴
소리새/오월의 편지__신청합니다.
---내 아이가 걸어갈 길---
*wow
200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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