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봄바람은 불었답니다
유연숙
2014.03.11
조회 72
그때도 봄바람은 불었답니다.

30년 전 그 날은 아침부터 잔뜩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봄비가 내려야 얼마나 내리겠어.’하는 생각에 우산은 챙기지도 않고 등교를 했습니다.
오후 강의가 끝나 갈 무렵 봄바람이 차갑게 부는 가운데 봄비답지 않게 제법 많은 양의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대학에 입학을 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도 없었고 서로가 서먹서먹한 상태였죠.
집에는 가야겠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으니 새내기 체면에 빗 사이로 막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1층 현관에 서서 삼삼오오 모여 학생들이 우산을 쓰고 교정의 언덕길을 내려가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몸을 엄습해 오는 봄바람이 유난히 차갑다고 느끼며 비가 그치기만 기다리면서 혼자서 빗줄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제 옆으로 다가오더니 쑥스러운 듯 저에게 우산을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과 남학생이긴 한 것 같은데 한 번도 말을 나눠 본 적은 없었습니다.
“어쩌지? 고맙다하고 우산을 받을까, 말까.”
예측도 못 했던 일이라 짧은 갈등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고 있는 내게 그 남학생이 먼저 말을 하더군요.
“사실은 이거 내 우산이 아니고 기숙사 생활하는 같은 방 친구한테 빌린거예요. 내일 꼭 가져 와요.”
순간 감동이었습니다.
봄바람과 더불어 하늘에선 비가 그칠 줄 모른 채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이면 본인 우산을 빌려주기도 어려운 일인데 남한테까지 빌려서 저에게 주었으니 말입니다.

덕분에 차가운 봄바람을 우산으로 막고, 떨어지는 빗방울을 음악처럼 들으며 집에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날 이후, 봄바람이 불거나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생각나는 사람, 그리고 잊지 못 할 추억이 있습니다.
오래 전 봄, 저에게 조심스럽게 우산을 건네주던 바로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입니다.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 들려 주실거죠.

우쿨렐라 쏴 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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