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친.소
홍경석
2014.11.12
조회 29

지난 3년 전 늦가을의 어느 일요일. 그날은 초등학교 동창의 아들이 결혼을 하는 날이었다. 대전 사는 동창이 운전하는 승용차의 틈에 끼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천안으로 출발했다. 친구의 차는 고급세단에 걸맞게 전혀 피로하지 않아 매우 편했다.

하지만 현실적 고민은 다시금 다가오는 핍색(逼塞)의 곤궁함이란 것이었다. 그래서 휴게소에 잠시 들러 커피를 사는 친구에게 귀엣말을 전했다. “내가 요즘 실직자라서 여유가 없어 그러니 미안하지만 축의금으로 낼 돈 5만 원만 꿔 줘!”

친구는 흔쾌히 그 자리에서 돈을 건넸다. 결혼식을 구경하고 음식도 잘 먹은 뒤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 친구는 차를 대청호로 몰았다. 그러더니 비싼 음식의 푸짐한 저녁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억병으로 취했는데 그 친구가 더 고마웠던 건 당시 그 전의 등산모임에 이어 다시금 만취한 나를 집 앞까지 태워다주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라도 호시절(好時節)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자면 지난날의 나 역시 꽤나 잘 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최고급 승용차를 ‘뽑았던’ 당시에 우리 동네서 차가 있는 사람은 나 말곤 없었으니까. 그러나 인생이란 불과 한 치 앞조차를 가늠치 못 하는 청맹과니의 궤적을 점철하는가 보(았)다. 이후 사업과 장사에서 연전연패를 하는 바람에 그만 오그랑쪽박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러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감탄고토(甘呑苦吐)의 현실이 뚜렷이 나타났다. 이른바 ‘객지’서 사귀었던 그 많던 사람들은 하나 둘 달아났고, 심지어는 내가 거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유추하건대 아마도 내가 돈을 꿔 달라거나, 아님 술이라도 사 달라고 조를까 봐서 그랬지 싶(었)다.

사실은 그게 아니었거늘...! 하여간 당시는 여차여차하여 다니던 곳을 그만 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한데 놀아도 집에서만 있다간 동네사람들 보기에도 민망스러워 만날 선배의 사무실에 나와 잡무를 도와드리고 오후에 ‘퇴근’하곤 했다.

그러므로 경제적 현실로 치자면 당시가 나로서는 가장 어려운 고갯마루에 서 있는 형국이었다. 또한 이를 ‘운전’으로 치자면 지궁차궁함의 협곡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과도 진배없었던 것이다.

그렇긴 하되 나는 당시의 어떤 난국에 대하여서도 애써 긍정의 항구에 정박코자 노력하였다. 왜냐면 인생이라는 운전은 내 맘처럼 백사여의(百事如意)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까닭이기에.

혹자가 이르길 좋은 친구 셋만 둬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실패한 인생은 아니지 싶다. 지금도 내 주변엔 가히 간담상조(肝膽相照)에 필적하는 알토란 친구와 지인들이 무려 수십 명이나 포진하고 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그 친구들을 사귄 ‘수명’ 또한 얼추 50년에 육박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는 ‘나의 오친소’, 그러니까 “오래된 나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에도 부합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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