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종가의 며느리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우리 형제들까지 대식구였죠.
식당이 따로 있지 않은 그 시절에 부엌에서 방까지 밥상만 세 개를 날라야 했습니다.
엄마는 농사짓는 일로 몸이 고달팠지만 더 고달픈 건 할머니의 잔소리였어요.
딸 세명이 태어날 때까지도 할머니는 “조상님 제사를 지낼 아들을 낳아야지, 쓸데없는 가시내들만 줄줄이니 원...”하며 엄마를 못마땅하게 여기셨습니다. 제 어린 기억에도 할머니가 화를 내면 저는 엄마 치마뒤에 숨어서 할머니 눈치를 보던 생각이 납니다.
게다가 아버지마저 자상한 분은 아니었어요. 당신 자신만 철저하게 챙기고 은근히 엄마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받았던 설움을 그나마 아버지가 달래줬다면 약간의 위안이 되었을 테죠.
엄마는 부엌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면서 눈물을 찍었고, 조그만 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 할머니가 엄마 꾸중해서 슬프지?”
저는 위로랍시고 엄마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 나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엄마는 “할머니, 나쁜 사람 아니야...”라며 제 어깨 한쪽을 감싸줬습니다.
그때 엄마는 이미자의 노래를 가끔 불렀습니다.
후에 알아보니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였어요.
“엄마! 예전에 이미자 노래도 가끔 불렀는데 기억나요?”
명절때 친정에서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글세...지금은 다 까먹었어.”라고 하시대요.
85세인 우리 친정엄마는 참으로 한많은 세월을 사셨습니다.
엄마에게 남은 건 꼬부라진 허리와 허연 머리카락과 주름살투성이의 얼굴입니다.
그래도 아직 엄마는 소녀처럼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은 분입니다.
*신청곡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설날)엄마가 불렀던 그 노래
양옥희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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