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 백 배 이상으로
홍경석
2015.03.25
조회 56
#1
“오늘은 뭘 먹을까?”나의 질문에 아내는 잠시 골똘히 생각의 냇물에 빠졌다. 그러나 금세 또랑또랑한 어조로 답했다. “볶음밥~! 당신은 짜장면?”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린 집을 나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단골 중국음식점으로 갔다. 주문을 하라며 아줌마가 다가왔다. 아내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저는 볶음밥 주시구요, 이 사람은 짜장...”나는 아내의 주문을 중간에 잘랐다.

“아뇨, 전 짬뽕 주세요. 얼큰한 걸로.”아내는 짐짓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까는 짜장면이라더니?”“이 사람아, 짜장면하고 어떻게 소주를 먹어?”“그럼 그렇지.”

먼저 차려진 단무지와 썬 양파에 이어 이윽고 볶음밥과 짬뽕도 뜨거운 김을 헐떡이며 식탁에 올랐다. 나는 소주를 한 병 시켜 같이 먹었다. 아내가 물었다. “술이 그렇게 좋아?”“그래, 좋다! 당신은 안 좋냐?”

“나도 좋아.”이는 야근 뒤의 쉬는 날에 우리 부부가 누리는 나름 행복의 ‘현장중계방송’이다. 작년에 두 번의 수술 뒤 급격히 체중까지 감소한 아내를 위해 나는 일주일에 최소 하루는 그처럼 외식을 한다.

그것도 아내가 원하는 음식으로의. 근데 이게 바로 나로선 아내와의 행복한 외식이자 또한 외출이다.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서로 좋으냐고 물었을 때 우린 이심전심이자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했다.

그래서 부부는 부창부수라고 했으리라. 아무튼 이‘좋다’라는 말은‘좋나’의 동격으로 어떠한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만하다는 뜻이다. 또한 말씨나 태도 따위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아니할 만큼 부드럽다는 의미까지 지니고 있다.

#2
야근에 들어가려고 시내버스에 올랐다. 시험을 본 덕분에 일찍 하교를 하는지 아무튼 일단의 학생들이 우르르 탑승했다. 그리곤 이내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는 학생과 서로 대화(수다를 떠는)를 하는 부류로 양분돠었다.

한데 말끝마다 “존나...”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귀에 거슬려 한 마디 하려다가 꾹 참았다.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가 뭔데 남의 일에 참견이슈? 라며 대거리라도 한다면 오히려 내가 차안에서 그야말로 개망신당할 게 뻔해서였다.

요즘 아이들과 학생들, 심지어는 일부의 여성들까지도 거침없이 사용하는‘존나’라는 표현은 엄연한 욕이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더 팍팍하다보니 욕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긴 하지만 욕이라는 건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지 그렇게 아무데서나 마구잡이로 해선 곤란하다.

‘욕’이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인 ‘욕설’이기 때문이다. 또한 욕을 하는 건 마음보가 궂은 까닭이기에 지양해야 마땅한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아니에요, 저는 그저 친구들이 다 그러기에 덩달아 습관적으로 따라했을 뿐예요.”라고 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습관은 무섭다. 예컨대 갓 시집을 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물었다.“얘야, 김치는 다 담갔니?”그러자 며느리 왈.“아뇨, 존나 힘들어서 안 했어요.”그럼 다음 상황은 과연 어찌 전개될까?

아, 물론 이건 웃자고 작위적으로 꾸며낸 말이다. 결론적으로‘좋나’가 ‘존나’보다는 훨씬 낫다. 최소한 백 배 이상으로.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