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 때였어요. 집과 직장을 쳇바퀴 돌 듯 하면서 뭔가 생활에 자극이 될 만한 일을 찾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생각한 게 영어 회화였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영어로 내 소개쯤은 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그야말로 범국제적인(?) 생각을 한 거죠.
대학 1학년 교양시간에 순전히 학점을 위해 듣던 그 때 이후로 거의 4년만이었어요
.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색다르고 점점 재미를 느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저보다 조금은 색다르고 점점 재미를 느껴가고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저보다 더 어린 학생들이랑 학원을 다니니 왠지 저도 조금씩 젊어지는 기분도 느꼈구요.
그렇게 한달 남짓을 다니던 어느날이었어요. 그날도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좌석버스를 탔죠. 하교하는 학생들에 밀려 저는 제일 늦게 버스에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빈자리를 찾았고 다른 사람이 앉을새라 재빨리 그 자리에 엉덩이 도장을 찍었죠. 역시 나는 재빠르다고 스스로 칭찬을 하면서.
근데, 근데말예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빈자리를 놔두고 서 있는지를 자리에 앉고 나서야 알았어요. 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눈부실 정도의 황금색 머리에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파아란 구슬같은 눈을 하고 있는 외국인었지 뭐예요. 게다가 그 파란 눈의 외국인은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잇는 거예요.
그 때 영어학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 났어요. 영어를 배우다 보면 배우지 않을 때보다 왠지 외국인 만날 기회가 많을 것이다.그래야만 영어실력이 향상된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기필코 그렇게 하리라 생각을 했엇는데 왜 갑자기 가슴이 뛰고 다리가 떨리는지 차 바닥이랑 제 구두바닥이 펌프질을 하고 잇지 않겠어요?
크게 숨을 쉬고 정신을 가다듬고 그 외국인을 보니 제 무릎 위에서 정신없이 떨고 잇는 영어책과 두꺼운 영어사전을 유심히 보고 있는 거예요. 이미 감추기에는 늦어버렷다고 생각한 순간 그 외국인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여는 거예요.
"하이(Hi)"
아이고 인사성도 밝지.
"하, 하, 하이"
휴~ 저는 마음 속으로 빌었죠. 이제 제발 아무말도 하지 말아달라고, 게다가 제 옆에 서있는 여고생들이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거리며 저희들끼리 소곤대는 거예요. 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오른손으로 왼쪽손을 신경질적으로 긁고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이번에는 그 사람이 한 마디도 아니고 뭐라고 계속 얘기를 하는 거예요. 저는 못 들은 척하고 있었죠.사실 하나도 알아 들을 수도 없었지만. 그러자 그 사람은 또 저를 더 가까이 쳐다보며 게속 얘길 하지 않겠어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뭐라고 하는 거지? 아니, 왜 이렇게 하나도 들리지 않지? 아아 어떡하면 좋아요. 박승화씨.
그 상황에서 제일 먼저 나온 소리가 뭔지 아세요? 글쎄 오른쪽 새끼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던 제 입에서 저도 모르게 모기소리처럼 나온 말이 "지금 뭐라고 하나?"였어요. 그 순간 제 옆에 서 있던 여학생 둘이서 버스가 떠나가도록 웃어대는 거에요.
저는 이제껏 살면서 그렇게 덥고 땀나는 봄은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 내릴 곳을 몇 정거장 남겨두고서 황급히 내려버렸어요.평소에는 좌석 버스비를 제일 아까워 하던 저였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눈물이 핑 도는지, 아마 누군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고개를 푹 숙이고 가는 나를 봤으면 실여당한 줄 알았을 거예요.
봄이 되니 그 때의 악몽이 다시 되살아 납니다. 이제는 잊어 버릴 때도 된 것 같은데.......
신청곡은 '마이티 마우스 백지영' 의 <사랑이 올까요>를 4월 10일(일)에 경희대학교 수원켐퍼스 지리학과 동문들과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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