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자가 아닌 나
강순선
2016.05.07
조회 71
새벽 5시, 작은 아들이 공군 입대하는 날, 곤하게 잠이 든 두 아들이 깰까봐 소리 죽이며 전날 저녁 수산시장에서 사다 놓은 싱싱한 전복으로 전복죽을 끓였습니다. 새벽까지 형이랑 둘이서 두런두런 얘기하다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 아침 식욕이 없을 텐데도 엄마의 정성이라며 맛있게 전복죽 한 그릇을 다 먹어 주더군요. 옛말에 진주라 천리 길이라고 했던가요. 고속버스로 5시간에 걸쳐 경남 진주 공군 기본 군사 훈련소에 둘째아들을 맡기고 왔습니다. 지역별로 나누어 넓은 대연병장을 가득 메운 입소 병들 가운데 우리 아들이 어디쯤에 서 있는지 어미 눈에 지 새끼는 금방 눈에 띄었습니다. 국민의례, 단장 환영사, 훈육요원 소개 등 행사가 진행 되는 동안 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시선은 저 멀리 입소 병들 사이에 하나의 점으로 보였지만 그러나 또렷하게 보이는 아들에게만 꽂혀 있었습니다.
가족석을 가득 메운 부모님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가족석 앞을 사열하며 생활관으로 손 흔들어 주며 들어가는, 짧게 자른 머리 아들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텅 빈 대연병장과 모두 떠나버린 텅 빈 가족석 내빈석을 보면서 4년 전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큰 아들 품에 안겨 참았던 눈물을 폭풍처럼 흘렸습니다. 어린나이에 아빠 없이, 가진 것 없는 엄마 곁에서 마음고생 했을 아들에게 미안하고,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건강한 마음으로 입대하게 되어 줘서 고맙고 그저 내 설움에 북받쳐서 “미안해! 미안해! 고마워! 고마워!” 그 말만 되풀이 하며 울었습니다. 6살 때부터 아빠 없이 이만큼 자라서 오히려 엄마 걱정하는 마음 안심시켜주려고 “엄마가 살고 있는 나라를 아들이 안 지키면 누가 지키겠냐고” “삼시세끼 밥 주지, 무료 숙소제공 해주지, 사회성 훈련시켜주지, 인간되라고 교육시켜주지, 건강하라고 체력단련 시켜주지, 그러니 축하해야 될 일이지 절대 걱정하시지 마라”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 해 주던 아들, 속마음은 두렵고 군 생활에 대한 막막함이 있었겠지만 아빠처럼 의지하던 형 한테 오히려 엄마 걱정을 해줬다던 그런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단장님 환영사에서 “아들들을 건강하고 훌륭하게 훈련시켜 떳떳하게 부모님 곁으로 보내 드리겠다”는 말씀을 믿고 기다려야겠습니다. 텅 빈 허전한 마음은 현재 청소년 지적장애인 주거시설에서 사회재활교사 사회복지사로서 일하며 저를 엄마라고 부르는 이곳 아이들에게 더욱 사랑 베푸는 것으로 채워가겠습니다. 아들도 엄마가 분명히 그러하리라 믿고 훈련 잘 받고 군복무 멋지게 하고 돌아오겠지요? 2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들이 제대하고 나면 엄마도 그동안 뭔가 한 가지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 고등학교 때 부터 배우고 싶었던 기타? 어른이 되어 배우고 싶었던 우쿨렐레? 오십 중반의 엄마가 나이를 극복하고 아들 없는 동안에 악기 하나쯤 다룰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군복무 열심히 하고 돌아 온 아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입대하기 전 마지막으로 본 엄마 모습 그대로 화사하고 고운 모습으로 기다리려합니다.
큰아들은 강원도에서 학교와 직장 때문에 한 달에 한 두번 올라오고 작은아들은 군복무를 시작했으니 퇴근하고 텅 빈 집안에 들어설 때 허전합니다. 그동안 혼자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면서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모습으로만 살아 왔는데 혼자 남게 되니 그동안 숨겨 둔 저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리고 외롭고 서러웠던 나, 하지만 <혼자가 아닌 나>입니다. 기다리면 오는 아들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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