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에 대한 기억
김태자
2016.09.28
조회 55
"이거 한번 드셔보실래요?"

먼 해남에서 굴껍데기 비료를 싣고 밤새워 도착한 트럭 기사에게 열매 한알을 내밀었습니다.

"이게 뭐지요? 잉? 대춘가? "
"일단 한번 맛을 봐봐요"
"모르겠는데...... 으음. 키위 맛인데?"
"하하 맞아요. 우리나라 토종다래 키위 조상이죠"

짙은 녹색이라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구별이 안되는 이 열매가 숙성되어 말랑말랑하고 쭈글쭈글해지면 참 맛이 좋더군요.

오래전에 시골에서 살게되면서 좋은 점은 내가 원하는 나무를 심어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기에 그 나무에서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그러다 이웃동네에서 어느 분이 다래나무를, 제법 나이 먹은 나무 한그루를 갖다 주셨어요.
요즘은 묘목상에 가면 어렵쟎게 구할 수 있지만 그때만해도 다래묘목을 얻기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얼마나 좋은지 앞 뜰에서 제일 땅심이 좋은 곳에 고이 모셔 심었습니다.
어찌나 잘 자라는지 이년쯤지나니 옆의 화초고 나무들을 모조리 제압하면서 감당하기 힘들만큼 제 세력을 과시하더군요.

"하이구나. 이러다간 다래 니 하나밖에 안 남게 생겼네"

지금같으면 적절히 가지를 잘라가면서 키울 수 있겠지만, 그땐 전지하는 일을 몰랐던 터라 이 나무를 이사시키기로 했습니다.
집안은 비좁아 바로 앞 동산 기슭에 묻어두고 오며가며 다래가 열려주길 기다렸습니다.
산으로 간 이 나무는 더 왕성하게 가지를 뻗어가고, 몸을 칭칭 감기도 하면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응달이라 그랬는지 봄에 겨우 몇송이 꽃만 보여주더니 늦여름에 딱딱한 새끼손톱만한 다래가 몇 개 열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래 덩쿨아래 독사가 터를 잡기 시작한 겁니다.
그 독사 입장에선 기막힌 보금자리인 셈이죠.
집의 닭을 풀어 놓아도, 고양이가 그 곁에까지 가도 칭칭 엉켜있는 다래 덩쿨을 비집고 들어갈 수는 없었거든요.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쩌지?"
아무리 오랫동안 시골살이를 해도 뱀은 도무지 적응이 안됩니다.
풀이 우거진 곳은 무조건 겁이 나는데 독사라니!
다래순을 따고 싶어도 꽃이 피었나? 들여다보고 싶어도 오금이 저려 결국 심어둔 다래나무를 없에자는데 의견일치.
두어시간을 어른 두 사람이 덩쿨을 잘라내고, 끊어내고, 뜯어내어 멀찌감치 갖다 버렸습니다.
그 오랜 작업동안 눈에 보이지 않게 피해있던 독사는 몇 시간후에 가보니 다래넝쿨이 있던 자리에 돌아와 있더군묘.

아, 그 다래 맛 다시 보고 싶었는데......
추억속의 그 다래 맛은 포기해야겠다.

사십년이 다 돼 가네요.
고등학교 가을 수학여행
합천 해인사로 갔었는데 절 아래였던가? 큰 개울엔 맑은물이 흐르고 있었고 친구 몇이서 가야산 정상까지 올랐다가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는 길
그 당시 김상희씨의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이 노래가 유행했던 기억이네요.
우리도 그 노래를 합창했던 기억입니다.
그 내려오는 길목에 머리에 수건을 쓴 할머니들께서 보자기에 뭔가 펼쳐놓고 팔고 계셨습니다.
"저게 뭐지?:
호기심에 아껴뒀던 용돈을 꺼내 샀습니다.
"처음보는거네?"

입에 넣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나? 뭐가 이래 달아요?"

그게 다래라고 하더군요.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아 ! 그기서 나오는 다래?
안 익은 듯한 열매가 머리가 찡 하도록 맛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러다 얼마전에 깊은 산 속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다래를 맛 볼 수 있다는 알게 됐습니다.
산림청이나 농업기술센터에서 그 토종다래를 연구하고 개발해서 다래농장에서 재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부부는 그 얘길 들은 이튿날 두어시간을 달려 다래농장을 찾아갔습니다.
다래덕장엔 품종이 각각 다르다는 다래가 달려있고, 맛을 보여주시는데 예전의 그 깜짝 놀랄만한 맛은 아니였지만 자꾸자꾸 먹게되는 맛이었습니다.
재배하시는 안주인은 전국민이 다래를 알고 먹었으면 좋겠답니다.
변비걱정없고 나이들어 관절 쑤시는데는 그만이라면서됴.

두고두고 먹으려고 십키로를 사다놓고 자료를 찾아보니 피부질환에도 아주 좋다고 하고.
엄지손톱만한 초록색 이 열매
언뜻보면 투박해보이는데 자꾸 맘이 갑니다.

이러다 나도 다래 농장을 하나 만들고 싶어질 듯 합니다.

신청곡: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입니다.
서툰 글이지만 겨우겨우 회원가입해서 적어봤습니다.
글이 맘에 안드시면 노래라도 부탁드립니다.
안성에서 어떤 할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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