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고 하니까 갑자기 고등학교때 일이 생각납니다. 그 때 저는
인문계고등학교와 실업계 고등학교사이 진학을 두고 갈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인문계고등학교에 가시기를 바라셨어요.
하지만 현실은 제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점수도 안 됬고 실력도 안
됬습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교무실에 저를 부르셨어요. 제가 좋아하던
한문여선생님이 하필 우리 담임선생님 옆자리셨습니다. 한문선생님은 저를
보시더니 방긋 웃으셨습니다. 참 예쁘셨는데...
담임선생님은 인문계냐 실업계냐 생각 많이 해보셨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인문계고등학교를 가고 싶다고 했는데 담임선생님은 언성을 높이시며
'글쎄... 이 점수가지고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힘들어.. 내가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니? 고등학교 시험에 떨어져 재수할래?.
대학을 가려고 재수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재수한다는 소리는 내 살다살다 처음 들어본다.' 그 때 왜 담임선생님은
교무실에 있는 선생님들이 다 들으시라고 큰 소리로 말씀을 하셨는 지
한문선생님은 적잖게 저한테 실망하신 눈치셨습니다. 그 날 저녁
아버지한테 실업계고등학교에 간다고 말씀드렸다가 눈물이 나도록
혼났습니다. 어찌나 서럽던지... 아버지는 뭘 잘했다고 우냐고?...
'어떻게든 이 아버지가 빚을 내서라도 너 대학은 보낸다니까 너는 공부만
하면 되잖아?.. 뭐가 그리 어려워?..' 아버지는 그 날 학교에 가셔서
담임선생님과 단판을 지셨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그런 포기할줄 모르시는 근성과 끈기가
있으셨기에 제가 그래도 좋은 고등학교는 아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기대에 계속 부응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가라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아버지한테 그저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아버지는 미국유학을 권하셨지만
저는 장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공부할 머리도 아니고 공부에
재능에 정말 없는 거 같았어요. 그 때 아버지 말씀을 듣고 미국유학을
가는건데.. 장사한답시고 강남 논현동에 있는 아파트 7억을 다
탕진해버렸습니다. 그 일로 결국 저희 아버지는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의 병명은 심근경색이셨습니다. 아버지는 지금도 동국대병원으로
한 달에 세 네번 통근치료를 다니십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몇 번 못 가봤습니다. 저도 착한 아들은 못 되는 거 같습니다.
자식일이라는 것이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 근심,걱정
있으신 부모님들이 어디 계실까요?
아버지를 모시고 조만간 강원도쪽으로 단풍여행을 가려합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떠나보는 게 대학졸업 후 13년만입니다. 참으로
저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불효자 같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계속
걱정시켜드리고 성공하는 모습을 아직도 못 보여드리고 있어서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저희 아버지 연세가 환갑을 넘으셨는데.. 그 생각만
하면 가슴에 한이 맺히고 눈물밖에 안 나옵니다.
아버지! 건강하세요. 앞으로는 더욱 더 아버지한테 잘해드리고
효도하겠습니다.
부디, 못난 이 막내를 용서하세요.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순이 -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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