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 산다는 것은... 이 노래를 듣고 있자니 옛 생각이 불현듯이 납니다.
그 때 저희 아버지는 대구에서 서울로 사과를 배달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트럭도 두 대셨습니다. 트럭 한 대는 아버지가 모시고 또 한대는
여직원을 두셨습니다.
그 때 그 여직원은 여자의 몸이지만 한 집안의 가장이였어요. 자기 아버지는
그 누나가 중학교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장애인이라 일을 못하시고
여동생과 남동생을 돌봐야했습니다.
사정이 딱해 저희 아버지가 채용을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따라 대구에서 서울로 갔었고 그 누나를 따라서도 대구에서
서울로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버지한테는 죄송하지만 그 누나와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게
더 재미있었습니다.
그 때 저도 꿈많고 순수한 이십대였고 그 누나는 삼심대 초반이였습니다.
그 누나는 노래를 잘했고 저도 노래를 좀 잘했습니다.
서로 유리상자와 김종찬의 노래를 불러주면
그 누나는 저때문에 심심하지도 않고 졸음운전도 안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친형보다는 그 누나가 더 좋았습니다. 그 누나는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저한테 가락국수,장터국수,충무김밥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음식을 많이
사줬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 사업이 잘 안되서 그 누나 월급도 많이
밀리고 그래서 저희 아버지가 그 누나한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 누나와 헤어진다는 게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 누나와 한 달에 한 번정도 만났지만 그 누나가 시집을 간다고 해서 제가
많이 슬퍼했죠.
신랑이 철도원이라는데.. 그 누나는 여행은 많이 다닐거 같았어요.
요즘에도 기차타고 논산하고 강원도를 일년에 두 차례 가는데요.
기차에만 오르면 그 누나 생각많이 납니다.
철도원선생님들만 뵈면 그 누나 잘 지내는지.. 잘 사는지.. 철도원선생님들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저희 빛바랜 이십대의 추억담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리상자 - 아름다운 세상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