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박사 선생님
김성철
2017.01.19
조회 60
헬박사 선생님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지리 선생님은 연세가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라서 오락가락 하시는 부분도 많았는데, 때로는 아주 순박하신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꺼벙해 보이시기도 한 분이셨습니다.
반면에 매우 똑똑하신 분이라서 별명이 박사님이셨습니다. 성이 ‘허’씨라서 그런지 아이들은 그 분을 헬박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헬박사 선생님에 대해서 이런 저런 소문이 난무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원래 유명한 지리학 박사신데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를 다쳐서 지금은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소문...
대학교수셨는데 너무 머리가 좋은 나머지 몸이 받쳐주지 못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다라는 소문...
이러 저러한 소문이 많았습니다.
그 헬박사 선생님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칠판 가득 판서를 하시더니 우리에게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 필기하세요!”
우리는 열심히 필기를 했고 선생님은 칠판 앞에서 뒷짐을 지시고는 무슨 생각을 골똘이 하시는지 먼 산을 바라 보시면서 휘파람을 부시는 겁니다.
휘파람으로 유행가를 부르시는데, 이런 노래였습니다.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그 때였습니다.
“누굽니까? 누가 수업 시간에 휘파람을 붑니까?”
우리는 어리둥절 했습니다. 분명 휘파람을 분 사람은 선생님이셨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의 반응이 없으시자 우리는 다시 필기를 했고 선생님은 똑같은 자세로 휘파람을 부시는 겁니다.

그리고는...
“누굽니까? 도대체 수업 시간에 휘파람을 부는 사람이 누굽니까?”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일어서서 “선생님이 하셨잖아요?”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도 누군가가 그랬다가 사정없이 맞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필기를 했고 선생님은 또 휘파람을 부시는 겁니다.
“누구냐고 했습니다. 누가 예의 없이 수업 시간에 휘파람을 붑니까?”
선생님은 무척 화가 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선생님을 놀리는 겁니까? 누가 휘파람을 불었냐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런 대답을 안 하자 선생님은
“선생님이 좋게 좋게 이야기 하니까 선생님이 우습습니까? 선생님이 만만합니까? 당장 휘파람 분 학생 나오세요.”
“어허? 그래도? 안나옵니까? 그럼 우리 모든 학우님이 그 한 사람 때문에 고통 받아야 되갰습니까?”
“어허? 이래도 안나옵니까? 반장? 반장 어디있습니까? 반장?”
“네? 선생님?”“반장? 반장은 이 반의 대표니까 정직하게 이야기 해 줄 줄 믿습니다. 누가 휘파람을 불었습니까?”
“네?”
“누가 휘파람을 불었냐고 물었습니다. 누굽니까?”
“저기, 선생님 그게요?”“어허? 반장이나 돼 가지고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서야 쓰겠습니까? 빨리 말하세요?”
“선생님? 저희가 휘파람을 분 게 아니라 휘파람은 방금 선생님께서 부셨는데요?”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휘파람을 불었다고 했습니까?”
“네~ 네 그렇습니다.”
“반장 앞으로 나오세요. 아무리 선생님이 늙었다고 해도 魚魯不辨(어로불변)[어((魚)자와 노(魯)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함이니, 무식자의 뜻]하겠습니까?

그러더니 갑자기 몽둥이로 사정없이 반장을 때리시는 겁니다. 보다 못한 우리들은 선생님께 아우성을 질렀습니다.
“선생님? 진짜로 우리가 휘파람 분 거 아니고요. 선생님이 부신 거 맞는데요?”
“네? 그래요? 진짜에요 거짓말 아니에요?”
하지만 자존심이 무척 상하신 선생님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벌을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종례시간에는 담임 선생님께도 야단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억울하던지요?

참 좋으신 선생님이셨지만 순간적으로 돈다고 하지요? 순간 도시면 물불 안가리시는 선생님이시기에 우리는 언제나 조마조마 했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방과 후 시간이었습니다. 다행이도 방과 후에는 비가 말끔히 그쳤습니다.
하교를 하고 있는데 우리 헬박사님도 퇴근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헬박사님은 비가 안 오고 있는데도 우산을 쓰신 체로 학교를 나오셨습니다.
우리가 인사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랬더니,
“비가 지금 안 오나요? 비가 지금 안 오면 저에게 얘기해주세요?”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는 직접 보시면 아는 거 아닙니까?
“네! 선생님? 비가 안와요!”
“아? 그렇군요? 비가 안 오는 군요? 감사해요!”

그러면서도 우산을 접을 생각을 안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아이들이 인사를 하자 저희에게 하신 것 처럼 똑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비가 지금 안 오나요? 비가 지금 안 오면 저에게 얘기해주세요?”

하셨지만 비가 오지 않음에도 선생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계속 우산을 쓰고 가셨답니다.


우리 헬박사 선생님은 18년 전에 타계하셨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엉뚱한 재미를 주시던 헬박사 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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