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제비~
장경자
2017.04.14
조회 106
제가 중학교 때 일이에요. 지금으로부터 무려 수십 년 전 일이죠.
당시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워 다달이 내는 수업료를 제때 못내,
몇달치씩 밀리면 수업시간에 집으로 쫓겨가기도 했어요.

그날도 같은 반 친구 셋이서 수업료 때문에 쫓겨간 날이었어요.
부모님은 다들 돈벌러 나가고 안 계시기 때문에,
사실 집에 가봤자 뾰족한 수도 없었어요.
셋이 각각 다른 동네에 살았는데, 그중 한 친구가 산 넘어 동네에 살았어요.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그 친구네 집에 가서 놀다 오기로 했어요.
그 친구는 날마다 산을 넘어 걸어 걸어 학교에 오는데,
처음 가보는 나머지 둘은 더운 여름날에 헥헥거리며 산을 올랐지요.

한창 산을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시커먼 구름이 몰려왔어요.
바람이 휘몰아치고 사방이 컴컴해지면서 소나기가 좍좍!
우리는 삽시간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지요.
그러고도 뭐가 좋다고 깔깔대며 산을 넘어 친구네 집에 도착했어요.
교복을 짜서 말리는 동안 친구가 곤로를 마루에 꺼내 놓고는
밀가루 반죽을 하기 시작했어요.
"너네 배고프지? 내가 수제비 끓여 줄게."
그땐 지금처럼 수제비가 별미가 아니었어요.
쌀을 사서 밥을 지어먹을 형편이 안 되니까,
쌀보다 싼 밀가루로 칼국수니 수제비를 만들어
그걸로 곧잘 끼니를 때웠거든요.

맹물에 조미료도 없이 밀가루 반죽을 텀벙텀벙 넣어 끓인 수제비,
거기에 시어빠진 김치 몇 오라기가 곁들여졌지요.
우리는 허겁지겁, 국물을 후후 불어가면서 한 그릇씩 뚝딱했어요.
따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소나기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그리고 교실에서 쫓겨났던 마음속 서러움이 눈 녹듯이 스르르 풀렸어요.
"야, 난 수제비에 질린 줄 알았는데. 진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수제비다!"
우리 셋은 또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어댔지요.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수제비'를 끓여줬던 친구는
끝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요.
어느 땐가 중퇴를 했는데, 그 이후론 연락도 끊어졌지요.
오늘처럼 바람 불고 비오는 날에는 그 친구가 문득문득 생각나네요.
날마다 산을 넘어 다녀서 그런지 키에 비해 다리가 통통하고 다부졌던 친구,
그 친구도 가끔씩 저를 떠올리려나요???
그의 이름은 '임연숙'이랍니다.

그 친구와 함께 듣고 싶은 노래는
최백호의 "그쟈"인데요.
가능하실랑가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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