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승화님
30여년전 저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농사짓는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울 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즐겨 하셨는데 술, 담배 심부름은 삼형제 중에 맏이인 제 차지였습니다.
1970년대말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시골 동네 점빵에는 막걸리를 팔았답니다.
주전자를 가지고 가서 한 되나 두 되를 사오곤 했으며, 그리고 담배도 그 당시 협동, 환희, 한산도, 거북선, 청자 등 뭐 이런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 아버지는 늘 제게 주전자를 건네 주면서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곤 했답니다.
그런데 제가 살았던 시골 마을에는 동네 점빵이 없고 개울을 건너 초등학교가 있는 이웃집 마을까지 걸어서 30분정도 가야 했지요.
하루는 무더운 여름날 아버지가 밭에 김을 매시면서 덥다면서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싶어시다면서 제게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시더군요.
저 역시 덥고 짜증났지만, 아버지가 막걸리값 외에 20원을 더 손에 쥐어 주면서 남는 돈은 아이스께끼 하나 사먹으라고 하길래, 저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막걸리를 사러 이웃동네 점빵으로 향했죠.
그런데 막걸리를 사고 남은 잔돈으로 아이스께끼도 사서 먹었으면, 완전 꿀맛이 따로 없었답니다.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다먹고나서, 개울을 앞두고 너무 덥고 땀이 나서, 그만 호기심에 주전자 안에 담긴 막걸리를 한모금만 마셔보자는 유혹에 못이겨 그대로 주전자 주둥이에 제 입을 갖다 대었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왠지 막걸리가 엄청 시원하고 달싹지끈한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한모금만 더 마시면 아버지가 알게 뭐람...하면서 또다시 막걸리 주전자 주둥이에 제 입을 갖다대고는 홀짝 홀짝 막걸리를 들이켰답니다.
얼마나 마셨는지, 막걸리 주전자가 엄청 가벼운거 있죠.
그리고 돌다리로 만든 개울을 건너는데 자꾸만 어지럽고 비틀거리면서 중심을 제대로 못 잡고 팔자 걸음을 걷는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그만 발을 헛디뎌서 개울에 그대로 빠졌지 뭡니까. 옷이 젖은 것은 둘째치고 막걸리 주전자를 손에서 놓으면 안된다는 일념하에 주전자 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았죠.
겨우 개울물을 건너서 집으로 가려는데, 자꾸만 가벼워진 주전자가 신경이 쓰여서 잔머리를 쓴답시고 개울물을 주전자에 부어서 주전자를 가득 채웠죠.
밭에 도착해서 막걸리 주전자를 아버지께 건네주자 막걸리를 한사발 들이키신 아버지께서 오늘 막걸리는 왜 이리 싱거워...요즘 동네 점빵에서 막거리에 물 타는거 아냐...라면 엄청 화를 내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괜시리 막걸리 몰래 먹은게 들키까봐 몰래 뒷걸음질 치다가 술이 취해 그대로 뒤로 발라당 넘어졌답니다.
깨어나보니, 제가 안방에 누워 있고, 뒷통수에는 된장을 발라서 그런지 된장 냄새가 엄청 고약하더군요.
그랬습니다. 제가 막걸리 심부름을 하고 오던 중 막걸리를 마신 것이 뒤늦게 술이 취해 뒤로 넘어지면서 뒷통수가 돌에 부딪혀 피가났던 것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아버지는 절대 제게는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지 않으셨고, 제 동생이 막걸리 심부름을 도맡아서 하게 되었지요.
그 땐 막걸리 심부름을 하면서 10원짜리 아이스께끼 하나 사먹는게 재미였는데, 한번의 실수로 동생에게 심부름을 뺏겨 버린게 어찌나 안타깝든지 몰랐답니다.
요즘도 시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는 소주나 맥주 대신에 막걸리를 즐겨 드시곤 합니다.
신청곡 : 그 땐 그랬지 - 카니발, 아버지 - 인순이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