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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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찾아온 그녀의 기억
rosa
2010.04.06
조회 37
안녕하세요. 윤희씨. 광고기획사 실장님과 함께 행사를 준비하느라 눈코뜰새 없는 요즘입니다. 덕분에 이 시간까지 꿈음을 들으며 그 분들과 함께하고 있고요. 실장님은 기억 속의 그녀와 같은 학교를 나오셨고, 그녀처럼 열정과 성실로 무장하셔서 일하는 내내 그녀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정확히 11년 전, 캠퍼스 생활의 새로운 돌파구로 찾은 게 연애였습니다. 연애가 무엇인지 잘 모르던 그 시절. 돌이켜 보면 참 서툰 연애였고, 누가 잘못하였든 이별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디카도 폰카도 없었지만, 늦은 밤, 썰렁한 여의도 윤중로에서 둘 만의 벚꽃 구경도 하고, 각자의 캠퍼스에서 아는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던 그 시절. 페밀리 레스토랑을 가지 않아도, 분위기 좋은 이탈리아 식당을 가지 않아도 그냥 둘이 만나면 까르르 웃고 떠들고 말다툼하느라 시간이 흐르는 줄 몰랐습니다. 카라멜마끼아또는 이름조차 생소한 시절이라서 커피 전문점에서 아이리스가 블루마운틴을 마시며 티격태격 거리기도 하였답니다. E대 후문 건너편 바에서 인디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맥주를 홀짝거리며 각자의 미래를 상상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함께 할 미래는 서로의 머릿속 자리 잡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면 언제나 옆에 있던 그런 그녀였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한 번은 혼자 고향집에 가는데 싫다는 말에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남쪽 도시로 갔다가 저만 혼자 그 공항에 내 버려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7개월여를 보내다가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보고 싶을 거라고 눈물을 흘리던 그녀가 무척 고마웠지만, 언젠가 서로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면 각자의 길을 가게 되리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훈련병을 거쳐 이등병 생활이 끝날 때까지,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상을 나눴습니다. 그런 생활이 지쳤는지, 아카시아 꽃잎이 봄눈이 되어 날리던 날 그녀는 이별의 편지를 보냈고, 풋풋했던 첫 번째 연애도 거기서 진전은 없었습니다. 편지를 받던 날 눈부시던 저녁 햇살과 초저녁의 바람은 한낮의 열기를 식히기에 충분했고, 한동안 눈을 감고 햇살과 바람을 음미하다가 고참에게 '얼빠진 놈'이라고 혼났던 기억은 바로 어제일처럼 생생합니다. 매달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군대 안에는 그녀를 대신 할 것으로 넘쳤습니다.

제대를 앞두고 졸업반이 된 그녀를 그녀의 학교 앞에서 잠깐 만났습니다.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고 여전히 피부도 하얗고, 그녀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하루를 열심히 보내고 있더군요. 그녀의 새로운 남자친구이야기를 하더군요. '나비'. 나비는 그녀를 위해서 새벽 2시에도 신촌을 뒤져서 바나나를 사다 주는 그런 남자라고 하였습니다.

"너 나비처럼 그럴 수 있니? 넌 그런 적 없잖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은 채 헤어진 그날. 그 후로 그녀의 얼굴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 가끔 문자 정도 주고받았는데 지금은 그녀의 얼굴도 전화번호조차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함께 찍었던 스티커 사진은 없어진지 오래. 그냥 피부가 하얗다는 것 정도만 기억날 뿐...

하지만, 제거되지 않은 암세포처럼 불쑥불쑥 그녀는 제 머릿속에 등장합니다. 신승훈의 노래를 들을 때면, 텔레토비 인형을 볼 때면, 국내선 항공기 탑승권을 보면, 그녀의 고향 사람을 보면, 그리고 오늘처럼 그녀와 같은 학교를 나온 분과 일을 할 때면... 희미한 기억이 떠올라 그냥 미소 짓게 됩니다.

가슴 쓰린 기억이 없는 게 오히려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으니....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그녀의 근황을 알아볼 수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할 절박함도 없고, 그냥 늦은 밤 바나나를 사다 줄 수 있는 남자와 자신의 일을 가지고 건강하게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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