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여름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던 친구 녀석이 대학 3학년이 된 제가 연애한번 못해봤다고 놀리더니 그 녀석 같은 과 친구 녀석을 소개해 준다고 나오라고 하더군요..
시골스럽던 저는 그런 만남을 썩 내켜하지 않았지만 한 번 나가보기로 했죠.
늘 저를 골려 먹던 녀석이 웬일인가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입대를 5일 밖에 안 남겨둔 친구를 내보냈더라구요.
같이 밥도 안 먹고 처음으로 낯술이란걸 맥주 한잔으로 끝내고는 잘 다녀오라는 어색한 인사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남은 시간을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학교는 서울, 집은 충청도 옥천..
집에나 다녀와야겠다고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미리 준비하지 않은 터라 입석으로 의자 손받이에 살짝 기대고는 밖을 내다보며 상념에 젖어 있는데..
제가 바라보는 쪽의 창가에 앉은 손이 참 고운 한 남자가 한 시간도 넘게 책을 들여다 보는 듯하더니 말을 걸더라구요.
평상시 같으면 거기에 대꾸할만한 주변머리도 없던 저였지만 그날은 술기운 탓인지 이얘기 저얘기 주고 받았더랬지요..
참.. 기이한 인연인가요?
그 사람은 저랑 같은 옥천에서 19년을 살면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선배였더라구요..
집도 차로 10분 정도 거리였구요..
집을 떠나 낯선 서울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서초동에서, 그 사람은 안암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주말에만 만나며 1년 반을 노력한 끝에 저는 원하던 교사가 되었고, 그 사람은 공부가 더 하고 싶어 대학원을 갔습니다. 아직 공부중인 그 사람을 뒷바라지 하며 학생 신분인 그사람과 10년전 오늘 결혼해 옥탑에 살림을 꾸렸답니다.
10년동안 그 사람은 참 멋지고 존경스러운 직장인이 되었고 이사를 6번이나 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커다란 우리 집도 생기도 무엇보다 9살, 8살 연년생 두 아들도 있답니다.
서른 넷이 되는 동안 서로 같은 장소에서 34년을 살아온 우리 둘..
그 인연이 있게 된 그 날의 기차 안이 너무나 다행스럽습니다.
또 그 못된 초, 중, 고 친구 녀석이 더할 나위 없이 고맙습니다.
가끔 다른 남자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썰며 한다는 맞선도 한번 못 해본게 영 억울할 때도 있지만 10년을 살면서 참 한결같은 남자..
이 남자를 평생 사랑하며 살것 같습니다.
처음만난 1997년 7월보다, 2000년 4월의 결혼식날보다, 1주년, 2주년, 3주년,... 이제 10주년... 시간이 흐를수록 더 행복하다면 저 참 결혼 잘한거죠?
20주년, 30주년,... 한 100주년을 함께 하고픈 우리 남편 정말로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말과 함께 케이윌의 선물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 게시판 성격 및 운영과 무관한 내용, 비방성 욕설이 포함된 경우 및
기명 사연을 도용한 경우 , 관리자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게시판 하단, 관리자만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입력란]에
이름, 연락처, 주소 게재해주세요.
*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은 많은 청취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사적인 대화창 형식의 게시글을 지양합니다

10년을 함께 걸어온 남편과의 뜻깊은 날입니다.
곽해진
2010.04.20
조회 22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