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수십년 전 일이군요. ^^;;
저희집은 제가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셋방을 살면서 전전했습니다. 제 기억에서 가장 오래된 주인집 일이 생각납니다.
그 주인집에는 아마 장가를 들지 않은 노총각 <삼촌>이 있었습니다. 한쪽 눈에는 안대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한쪽 다리는 목발을 짚어야 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시작이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여름밤에는 그 아저씨의 옛날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녁밥을 먹고 어둑어둑해지면 형과 나는, 대마루에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로 가서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댑니다.
아저씨는 뜸을 들이다가는, 가서 톱밥을 구해오라고 하죠. 그러면 형과 나는 쫓아가서 톱밥을 구해옵니다. 지금은 톱밥을 구경하기 정말 힙들지만 그때만 해도 동네에서 톱밥은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저씨가 톱밥에 불을 붙이고 나면 톱밥에서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톱밥은 천연소재의 모기향이 되었고, 그 타는 냄새는, 지금도 가끔 향수를 자극하는, 옛날이야기 들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좋은 소품이 되었습니다.
그때 들은 호랑이 얘기라든가 달걀귀신, 처녀귀신, 화장실 귀신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톱밥에서 피어오르는 냄새와 아저씨의 감칠맛 나는 이야기 솜씨는 저의 가장 오래된 향수 중의 하나입니다.
우연히 어제 밤에 아내, 그리고 두딸과 아파트 베란다에서 상을 들고 가서 저녁밥을 먹었던 일이 즐거웠습니다. 지금은 딸들에게, 제가 옛날에 저녁만 되면 너무도 기다려지던 옛날이야기 시간을 줄 수 없지만, 저에게 그런 추억이 남아 있었고,
다시 그 추억을 되살리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아내, 그리고 딸들과 함께 더 좋은 여름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의 <삼촌> 아저씨를 다시는 볼 수 없지만, 그때의 추억은 제 기억 속에서 앞으로 많은 시간 동안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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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여름밤과 톱밥...
이명준
2010.07.06
조회 2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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