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의 심장외과 중환자실 간호사였습니다.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이며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환자들을 간호하는 것이 직업이었죠. 저는 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 손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봉사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할머니 환자 분이 밤늦은 시간에 응급실로 왔고 바로 중환자실로 옯겨져 제 담당환자가 되었습니다. 겉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지만 그 할머니는 급성 대동맥 박리라는 진단을 받았고 언제 혈관이 터져서 급사할지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할머니는 80세 후반이었고 가족들은 할머니가 고통스러울까봐 위급시 심폐소생술하지 말아달라고 싸인까지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할머니는 몸에 온갖 선을 달았고 안전을 위해 침대에 얌전히 누워 계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잠시도 침대에 누워계시지 않고 움직이시고 소리 지르시고 침대 밖으로 나오시겠다고 우기셨습니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화장실 갈거야"라고 하시며 침대 밖으로 뛰어내리시려해서 여러 간호사가 붙잡아서 겨우 침대에 눕혔습니다. 기저귀 채워드리며 불편하시겠지만 침대에서 변을 보셔야한다고 알려드렸습니다. 기저귀가 싫으시면 변기를 드릴테니 부디 누워계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달래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다고 협박해 보기도하고 얼마나 갑갑하시겠냐고 공감해드리기도 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화장실을 가야한다고 계속 주장하셨습니다. 급기야 할머니는 침대에서 일어나 쪼그려 앉으시며 변을 보시겠다며 침대 난간을 붙잡고 힘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몸에 달려있던 온갖 혈관주사와 심장모니터하는 선들이 엉키기 시작해서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변을 보시겠다고 쪼그려앉은 할머니를 실랑이 끝에 겨우 눕혔고 저는 드디어 옆의 환자의 투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끄럽던 할머니가 조용하니까 또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겁니다. 폭풍 전의 고요라고 할까요? 그 이상한 기분...'감'이라는 것이 있죠. 뭔가 잘못 된 거 같다는 생각에 할머니에게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를 모니터하고 있던 모든 기계에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의 대동맥궁이 파열되어서 결국 그 혈관이 터져서 급사하신 겁니다. 의식이 있던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가 들었던 말은 "가만히 누워 계세요"라는 내 외침이었을거란 생각이 드니 너무 죄송했습니다. 좀 더 부드럽게 말할걸...좀 더 할머니를 위할 수는 없었을까...온갖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가족들이 오기 전에 할머니를 깨끗이 닦아드리면서 할머니가 들으실 수 있으실진 모르겠지만 귀에 나즈막히 속삭이며 기도해드렸습니다. "부디 예수님 믿고 천국가세요"하구요. 그렇게 그 할머니를 영안실로 보내고 그날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마지막 들은 말이 가족의 따뜻한 배웅이 아닌 저의 화난 목소리였다고 생각하니 너무 죄송했습니다.
그 때 집으로 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들리던 음악이 러브홀릭 1집의 '러브홀릭'이었습니다. 노래가사처럼 제 눈에선 멍하니 눈물만 흘렀습니다. 그 할머니가 제가 담당했던 환자 중에 처음으로 사망하신 분이었기에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는 나약한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너무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죽음을 무시하게 된 상태가 되어 저는 비인간적인 제가 싫어 병원을 관두고 이직했죠. 지금도 러브홀릭 음악을 들으면 그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고인답니다. 그 후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보았지만 그 할머니가 제게 죽음을 알려준 사람이라 기억에 남나봅니다. 지금은 성함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 할머니가 부디 천국가셨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왠지 그 노래가 듣고싶어지는 밤이네요. 러브홀릭1집 수록곡인 러브홀릭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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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잊어버린 할머니를 기억하며
함지혜
2010.07.30
조회 35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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