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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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
이영호
2010.11.15
조회 25
안녕하세요. 윤희씨.

제 딸 이제 다섯살된 가현이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어제 오후 가현이를 데리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들이를 갔었습니다. 때마침 맑게 갠 서울 하늘 덕분에, 광화문 너머의 서울성곽과 북한산까지 한눈에 다 들어오더군요.

가현이는 광화문 광장에서 한가운데 있는 세종대왕 동상이 무척 신기했나 봅니다. 동상 의자 아래 쓰인 ‘세.종.대.왕’이란 글자를 또박또박 읽은 가현이는 곧 제게 물었습니다.

"아빠~ 세종대왕이 누구야?"

"응..한글을 만드신 할아버지야. 아주 훌륭한 분이셔~"

"그래...?"

"음... 그럼... 아빠! 영어(english)는 어떤 할아버지가 만드셨어?"

뜻밖의 질문이었습니다. 이제껏 영어를 대강 사용하기만 했을 뿐, 정확한 어원에 대해서 큰 고민조차 안 가져본 저였기 때문이죠. 아이의 사고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현명하면서도 쉬운 대답을 해야 했기에 순간 머릿속은 복잡했고,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냥

"음.. 영어는 영국에 있는 어떤 할아버지가 만드셨어."

"그래..? 어떤 할아버지인데?"

"사실은 아빠도 어떤 할아버지인지 잘 모르겠어. 아주아주 오래전에 영국에 살았던 어떤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만들었을 거야. 세종대왕 할아버지처럼 말이야"

현명하진 않더라도 나름 가현이가 수긍할 수 있는 답이라 생각했는데, 가현이는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런데 아빠.... 왜 미국에 있는 어떤 할아버지가 아니라 영국에 있는 어떤 할아버지가 영어를 만드신 거야? 영어는 미국 사람들이 말하잖아."

평소에도 한번 의문을 품은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가현이었습니다. 세종대왕 앞에서 한글의 우수성과 편리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려고 했던 애초의 계획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답니다.

"응..영국에 있는 사람들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 사람들이 영어를 쓰게 된 거야. 영어는 미국 사람들도 쓰고, 호주 사람들도 쓰고, 뉴질랜드 사람들도 쓰고, 또 캐나다 사람들도 쓴단다."

"그래...? 그런데 유치원에 영어 선생님도 영어로 말한다. 고모도 영어를 잘 말해서 언니들 가르치잖아."

"응..그래도 가현이도 영어를 재미있어 하면, 영어를 잘 말할 수 있을 거야."

쉽게 정리가 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면서 가현이는 "My name is 이가현. How are You? Today is Sunny" 등, 유치원에서 배운 생활영어 몇 마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 다 쉽게 말하는 우리말보다는, 좀 특별한 말이 가현이에겐 더 와 닿은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세종대왕 동상(좌상)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것은 가현이가 영어를 알기 전 우리말을 먼저 알았고, 제법 글에 대해 흥미를 느낀 탓에 스스로 글을 깨우치고, 혼자서 책도 읽고, 심심하면 엄마의 스마트폰을 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메신저로 대화도 나누고 가현이가 보고 싶은 동영상을 검색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현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부끄럽지만, 가현이 아빠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글을 완벽하게 깨우쳤고, 한때 소원이 받아쓰기 100점일 정도였거든요. 청출어람이라고 아빠보다 앞서 가현이. 가현이의 사고력과 호기심을 생각한다면, 제가 그냥 평범하게 살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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