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 게시판 성격 및 운영과 무관한 내용, 비방성 욕설이 포함된 경우 및
  기명 사연을 도용한 경우 , 관리자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게시판 하단, 관리자만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입력란]
   이름, 연락처, 주소 게재해주세요.
*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은 많은 청취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사적인 대화창 형식의 게시글을 지양합니다

아듀! 춘천 가는 기차
이영호
2010.12.20
조회 53

2010년 12월 20일 밤 10시 3분. 꿈음이 막 전파를 타기 시작한 그 때, 청량리에서 남춘천으로 가는 무궁화호를 끝으로 추억의 단편으로 묻혀버린 춘천 가는 기차. 개발에 힘입은 시간은 경춘선을 덜컹거리는 단선 열차의 효용에 의문을 제기하였고, 덕분에 경춘선 열차는 그럴듯한 옷을 갈아입은 복선 전철로 탈바꿈합니다. 본격적으로 전철이 다기니 시작하면 우리 동네에서 서울 한 복판까지 제법 가까워지겠지요. 하지만, 전철은 아날로그의 향기가 묻어나는 덜컹거리는 추억을 되살리기엔 최첨단이 아닐까 합니다. 마주 오는 열차 때문에 역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살짝 비켜가던 단선 철길의 마음 씀씀이도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요?

경춘선 기찻길 주변으로 제 꿈도 지금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도 커갔습니다. 경춘선 선로가 옮겨가기 전 우리집 바로 아래로 지나갔던 경춘선 열차.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기차가 한 번씩 지나갈 때 마다 지진이 난 듯 집이 흔들리기 일쑤였고, 기찻길에서 피어오른 먼지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답답할 때도 있었답니다. 하지만, 기차가 지나갈 때 베란다로 나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열차 내부를 관찰하는 재미도 쏠쏠했답니다. 딸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혹여나 기차 소리에 잠 깨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다른 소리에는 놀라던 아이는 기차 소리만큼은 자장가로 삼은 듯 했었답니다. 정작 저와 아내는 11시 무렵 경춘선 막차가 지나가야 비로소 잠자리에 청할 수 있었답니다.

수능시험 다음날. 무작정 기차가 타고 싶어서 탔던 춘천 가는 통일호.
대학 신입생 시절 MT에 대한 설렘을 안고 탔던 경춘선 통일호.
입대하던 날, 찹찹한 감정을 숨기고 여자 친구와 함께 탔던 경춘선 통일호.
홀가분한 듯 또 다른 짐을 안고 탔던 제대하던 날의 경춘선 통일호.
복학한 다음 종종 학교를 오갈때 이용했던 경춘선 통일호.
2004년 여름 바쁜 시간을 쪼개 아내와 첫 데이트 코스로 선택했던 경춘선 무궁화호와 백양리역.
우리 아이들의 생애 첫 기차여행으로 이용했던 경춘선 무궁화호.
그리고 출퇴근길의 교통체증과 궂은 날씨를 피해 종종 이용했던 경춘선 무궁화호.

오늘 밤이 지나면 타고 싶어도 탈 수 없는 기차가 된다는 사실에 아내와 제가 첫 데이트를 했던 백양리역도, 성북역을 막 벗어나면 등장하는 서울 외곽의 여유로운 풍경도 이제는 추억에 묻힌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그 먹먹함을 뒤로 한 채 인터넷으로 춘천 가는 마지막 기차표를 예매합니다. 그렇게나마 가슴 속에 춘천 가는 기차를 영원히 담아 두렵니다.

신청곡 / 춘천 가는 기차... 이 노래를 춘천 가는 마지막 기차 안에서 듣고 싶어요.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