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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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김하영
2011.05.28
조회 55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들여다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얼굴 왜 그래??"
오늘만해도 여러번..
요즘들어 정말 자주 듣는 말이다.

..얼굴 왜 그래..??

퉁퉁부은 눈, 짙은 다크서클.. 없어 보이게 쑥 들어난 볼...
이 전부를 숨기기에 굵은테 안경 하나로는 부족했나보다..

'정말 내 얼굴 왜 이러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주인의 무관심으로 날로 퍼석퍼석해지는 얼굴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오늘은 오랜만에 콜라겐이 담뿍 들어있다는 팩 하나를 얼굴에 올려주었다.

그러고는 책장에서 책을 하나를 빼어들고
잔잔한 실내등 조명 아래의 소파에 기대어 누웠다.
때마침 라디오에선 에쿠스틱 기타 반주와 잘 어울려진 촉촉한
노라존스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얼마만의 ... 휴식다운 휴식인가...
갑자기.. 충만한 행복과 녹녹한 여유가 밀려왔다..
그와 함께 약간의 외로움도..

음... 그래서일까..
아니면 비가 오는 스산한 밤공기 때문일까...
오래전.. 언제인지 기억도 없는 아주 예전에 사두었던
편지지를 꺼내 펼쳤다.
갑자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실로 오랜만에 '시도'하는 손편지.. ^^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시시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그때의 우리에게는.. 단짝 친구들끼리는 무조건 편지로만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 뭐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룰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 맞다!! 그리고
내게 줄기차게 편지를 건내주던 녀석이 있었다.
나름 킹카였던 그 애는 꼭 편지지에 몇 방울의 향수를 떨어뜨려 주는 로맨티스트였다.
그 향기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연히 스치기만 해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내 오감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내게도 그런 '순정'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매일 끼고 살다싶이한 편지가
이제는..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지다니..또 막 서글퍼지려한다.....

'누구에게 쓰지...
무슨말을 하지...
아.. 참.. 알고 있는 주소는 있나.. 이메일 말고.. 우편주소....'

오랜만에 손편지로 낭만 한번 찾으려니..
의외로 장애물이 많았다...

그렇게 한참을 적당한 후보자를 떠올리려 머리를 굴린 끝에
친구 한명이 생각났다.

한달즈음 전인가.. 술이 약간 취한 친구가 전화를 해서는 대뜸..
자기가 읽으면 좋을 만한 책 한권 보내 달라며
술주정 반, 진담 반..
한숨 섞인 말들을 이리저리 늘어 놓았다.

독서가 취미인 내게 친구들은 종종,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하곤 한다.
그런데, 이럴때마다 사실은 상당히 당혹스럽다.
누군가를 위해 책을 고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의 마음, 심리상태 그리고 그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을 잘 알고 있어야만
몸에 꼭 맞는 옷을 고르 듯
상대에게 꼭 맞는 책을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친구에게 주고 싶은 책은 바로 떠올랐다.
그것도 새로 사지 않고, 내가 읽고 책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소장본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내가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
그리고 설레임과 감동을 책 속에 그대로 담아 두었으니,

내가 읽어 내려간 한자 한자의 글을
이 친구 또한 천천히 따라 읽어 내려간다면..
어쩌면... 책 속에 담아둔 내 마음과 에너지를 친구도 그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둑한 실내등 아래... 노라존스의 노래를 들으며
얼굴에 붙인 팩이 다 마를때까지 씨름을 하고서야,
편지지 몇장을 겨우 끝낼 수 있었다.
(혼자 키득거리기까지 해서 어째 좀.. 엽기적인 장면 같기도 하다...)

곱게 접은 편지는 책속에 잘 넣어 두었다.
친구에게 책과 함께 (나름의) 이 러브레터를 넣어 보낼 참이다.
주저리 주저리...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은 내용이라 별 감동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 인생 최근 몇년만에
처음으로 쓰는 손편지의 주인공이 된것만으로
충분히 자신이 축복받은 몸이란 것을 알아주길 바랄뿐이다.

…………..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정말 좋았죠?? ^^
며칠전 꿈음을 들으며 일기장에 써 둔 글인데 옮겨봅니다.
친구에게 추천한 책은 공지영씨의 ‘수도원 기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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