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햇볕이 너무 뜨겁더라. 원래 길 걸으면서 음악을 잘 듣는 편이 아닌데 오늘은 너무 더워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길을 걸었어. 시원한 노래를 들으면서, 바다이야기가 나오는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청량감을 느끼고 싶었거든.
거리를 거니는 연인들이 많더라.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고 땀을 뻘뻘 흘리며 분주히 어디론가 가는 사람도 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 사람들을 보니 나도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무척 좋았어. 이마를 스치며 흐르는 땀도 좋았고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열기도 좋았어. 특히 이 여름의 에너지를 받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힘도 났어.
그러면서 지하철역으로 들어와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서성이는데 내 발 밑으로 작은 숫자들이 보이더라. ‘5-4’ 라는 작은 숫자. 그래 맞아. 늘 우리가 함께 타던 지하철 칸이지. 아무 생각 없이 턱을 스치는 이어폰을 정리하는데 눈에 5-4 가 보이는 거야. 사실 나 그때 좀 섬뜩했어.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아직 다 못 잊었나 싶어서.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들으면서 걸어서 선 곳이 바로 그 곳이라니. 무의식 깊은 곳 까지 자리 잡고 있는 우리의 행동습관이 무섭더라. 그것 때문에 머릿속에서 겨우겨우 밀어내고 있던 네가 다시 내 온 머리를 잠식해버리고, 우리가 함께 지하철을 타며 보낸 수많은 시간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더라. 집에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어.
억지로 내 머릿속에서 꺼내지 않아도 너와의 추억은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 모두 묻어있어. 우리 두 손 꼭 잡고 기다리던 우리 동네 신호등에도, 떡볶이가 맛있다며 함께 가던 분식집에도, 나를 보러 오는 널 목이 빠져라 기다리던 지하철역에도, 갈 곳이 없다며 툴툴 거리며 매일 가던 조그만 카페에도, 문득문득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속에도,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 속에도 우리의 추억이 묻어나와. 나도 몰라. 언제 까지 이럴지, 언제까지 너의 흔적을, 우리의 흔적을 좇으며 살지,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을 환기시키며 살지는.
맞아. 아직도 난 아직도 옛 추억들 속에 살고 있어. 주변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 보라고, 나 스스로 바빠져 보라고 많이들 조언을 해주곤 해. 너와 헤어진 지 시간이 많이 흘렀고 그래서 나 혼자인 시간에도 정말 익숙하지만 아직까지 주변 사람들의 조언처럼은 못하고 있어. 바보 같지? 넌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잘 지내는데 말이야. 하지만 나도 내 나름 생각이 있어. 우리가 함께한 3년이란 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 시간의 농도도 매우 진하고. 그래서 그 시간들에게 안녕이라고 말하기에 나한테는 아직까지 시간이 더 필요해. 그 시간과도 웃으면서 바이바이 하고 가끔 날 찾아 올 때 웃으며 맞아주려면 나한테는 아직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해. 그러니 혹시 내가 가끔 이러는걸 네가 알게 되더라도 죄책감을 갖거나 신경을 쓰지 않아도 돼. 잠깐만 아주 잠깐만 더 이러다가 말 거니까.
신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 하나가 ‘망각’이래.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되면 죄책감이나 후회, 미련 따위에 휩싸여 살아갈 수가 없대. 나도 지금은 추억 속을 걷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그 추억이란 녀석을 망각의 늪에 하나하나 던지고 있는 거지. 그 자리는 다른 시간이 채울 거고 또 흐려져 가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좀 슬프긴 하다. 하지만 잘 될 것 같아. 너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너도 많이 힘들었겠지만 잘 견뎌내고 지금 잘 살아가고 있잖아. 나도 힘낼게 걱정하지 마. 잘지내.
윤희누나 늘 좋은 음악 들려주시고 힘 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사연과 함께 넬-기억을 걷는 시간 신청할게요~
혹시 그 노래가 전에 나오거나 한다면 서지원- I miss you
부탁드릴게요
매일 밤 고맙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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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걷는 시간
서효일
2012.08.20
조회 88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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