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 게시판 성격 및 운영과 무관한 내용, 비방성 욕설이 포함된 경우 및
  기명 사연을 도용한 경우 , 관리자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게시판 하단, 관리자만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입력란]
   이름, 연락처, 주소 게재해주세요.
*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은 많은 청취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사적인 대화창 형식의 게시글을 지양합니다

인생은 이어달리기
이철안
2013.01.16
조회 100
저희 아버지께서는 지난 주 월요일 근무를 마지막으로 32년 동안 다니신 회사에서 퇴직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옛날에 대한민국의 최고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셨고 또 최고 대학교의 경영학과에 합격하셨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교 진학을 하는 대신 은행에 취직하셨습니다. 군복무 중에 어머니를 만나셔서 연인이 되셨고 제대 후 두 분은 결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학업을 소홀히 해서 아버지께 꾸지람을 많이 들었습니다. 공부를 너무나도 안 해서 아버지께 뺨을 맞기도 했습니다. 세게 맞은 것도 아닌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맞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께서 단 한 번도 자식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그 때 아버지의 마음은 발갛게 닳아오른 제 뺨보다 더 뜨겁고 아프셨을 겁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최고 대학교에 합격하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는 뜻으로 그동안 장롱 속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해두셨던 대학교 합격증을 꺼내어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본인께서 이루시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학업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여 대학원을 좋업했고 지금은 고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학업 능력과 열정이 크셨던 아버지께서는 생계를 위해 학업을 뒤로 미루셨는데, 반대로 그 능력과 열정이 부족했던 저는 지금 생계보다 학업을 더 우선시하고 있으니 불효자가 따로 없습니다. 서른한 살이 되도록 분가하지 못 하고 공부만 하는 못난 자식인데 아버지께서는 그저 묵묵히 지켜봐주십니다. 더 치열하게 공부하여, 낳아주시고 보살펴주시고 가르쳐주신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해야겠습니다. 은퇴 후 기운이 없어보이는 아버지께 하루 빨리 기쁨을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저녁에 아버지와 단둘이 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다 하시고나서 아버지께서 하모니카를 꺼내어 부르십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하모니카 연주입니다. 방문 넘어로 들리는 하모니카 소리가 듣기 좋습니다. 제 취미도 하모니카 연주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은연중에 당신을 닮고 싶은 마음이 발동해서인 것 같습니다. 홀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모습은 조금 처량해보이지만, 사실 연주하는 사람의 사정은 하모니카 연주를 통해 처량함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하모니카 연주와 그 모습이 정겹습니다. 귀에 익은 연주 곡을 듣다보니 어릴 적 아버지와 친밀하게 지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가끔씩 아버지께 벗이 되어드려야겠습니다.
직장에서 은퇴하신 아버지께 이런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그동안 우리 가족을 위해서 고생 많이 하셨어요. 어린 제가 보기에 인생은 마치 이어달리기 같아요. 이어달리기는 혼자서 달리는 게 아니라 다같이 달리는 거잖아요. 이제는 아버지의 바통을 저와 동생이 이어받을게요. 이제 숨 좀 고르시고 쉬시면서 자식들이 잘 뛰는지 지켜봐주세요. 그동안 애쓰셨어요. 고마워요. 아빠."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는 곡을 꿈음을 통해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문세 씨의 '광화문연가'를 들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