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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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
서효일
2013.05.03
조회 106
중국에서 노동절 연휴를 맞이해서 나도 무작정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저 멀리 가고픈 마음에 매표소 앞에서 그냥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의 표를 구매하기로 했고, 그래서 장가계로 떠나는 열차에 몸을 싣게 되었다.
중국 일반기차에는 세등급의 열차칸이 존재한다. 침대칸, 일반 의자칸, 그리고 잉쭈오라 불리는 개미지옥같은 최하급칸. 딱딱하고 좁은 의자에 서너명이 함께 앉는 참으로 불편한 칸이다. 나도 여석이 없는 나머지 어쩔 수 없이 이 잉쭈오 칸에 앉게 되었다.
새벽에 불도 꺼지지 않는 이 열차 안에서 21시간을 보내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어디로 떠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다닥다닥 앉아서 피로에 찌들어 잠 자는 사람, 이 의자칸마저 구하지 못해 입석으로 아이를 안고 서서 가는 젊은 아빠, 커다란 짐을 지고 너무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담배 피우는 아저씨. 그 중에서 내가 감명깊게 본 사람들은 늙은 노부부이다. 하얗게 쉰 머리와 깊게 주름진 얼굴에서 그들의 삶이 살짝은 엿보이기도 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서로에게 몸을 기댄 채 좁아터진 의자에 앉아 새우 잠을 자시던 노부부. 열차가 잠깐 정차하고 할아버지가 잠깐 내리시더니 커다란 닭다리 하나를 사오셨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할머니께 건네시곤 환하게 웃으시며 그걸 바라보셨다. 아 얼마나 아름답던지. 말없이 닭다리를 뜯이시던 할머니의 눈가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사랑이고 행복이구나 싶어 나도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나는 항상 비싸고 편안한 것에서 만족감과 행복감이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버스보단 자가용, 무궁화 보다는 KTX에서. 라면보단 썰어먹는 고기에서 보다 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그런 것들을 갈구하고 집착해왔다. 하지만 그런 비싼 것들을 쉽게 누릴 수 없었기에 필연적으로 열등감따위의 좋지 못한 감정들에 얽매여 왔다. 그런데 저 노부부의 미소가 나의 못난 덩어리들을 사르르 녹여 버렸다. 좁아터진 의자에 엉덩이 반쪽만 걸치고 있더라도, 천원짜리 닭다리를 먹더라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단걸 그 두분이 보여주셨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을 오래 잊고 지내왔던 것 같다. 그 노부부의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던 사랑만큼 나도 누군가의 손을 그렇게 잡아 보았던가? 아무말 없이 건네던 닭다리처럼, 작은 것이라도 누군가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서 순수한 마음 하나만으로 무언가를 건넨 적이 있었던가? 스스로 자문해 보아도 그러했던 기억들이 생각나질 않는다. 난 내 곁에 있는 사람만을 생각해서가 아닌 나의 체면,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질 내 모습들까지도 생각해서 행동해왔다. 내 옆의 사람에게 선물을 하거나 함께 시간을 보내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하면 더 행복하게 보일까 고민했었다. 나와 상대방보다 남들의 시선이 최우선이 되었던 것이다. 좋아하던 여학생에게 몰래 사탕을 건네던 그런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상대를 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물질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닌데 말이다. 손을 잡고 그저 그 시간과 공간을 두 사람이 함께 한다는 행복으로도 세상 무엇도 더 필요치 않을 것이다. 저 노부부에게 목적지는 중요치 않을 것이다. 어떤 곳에 가서 무엇을 보든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스치는 바람과 떠오르는 태양만 바라보아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울 것이다.
나도 다음 번 내게 오는 사람과는 그저 함께이기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을 서로 느끼고 싶다.

글과는 조금 연관성이 있는
김광석씨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신청합니다~
박완규씨가 부르신 노래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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