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 게시판 성격 및 운영과 무관한 내용, 비방성 욕설이 포함된 경우 및
  기명 사연을 도용한 경우 , 관리자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게시판 하단, 관리자만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입력란]
   이름, 연락처, 주소 게재해주세요.
*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은 많은 청취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사적인 대화창 형식의 게시글을 지양합니다

특집- 슬프다
조진관
2013.05.05
조회 84
-- 슬프다 --

어느 여인을 만나 수목원 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속삭임을 전달해주면서 사랑을 키워갔지요.그 여인과 만나 6개월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결혼하여 1년이 조금 넘으니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말에 그래 이제 되었구나. 사람은 살아가는
맛을 느끼면서 아내가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기분은 내 몸이 둥둥 떠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이 좋았으니까요.하지만 5개월 정도 되니까 다리가 부어오고 몸이 그렇게 부어가는 것 알지 못하면서 동네 작은 병원에 가보니 임신중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뱃속에 있는 자식 포기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을 때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뒤로 우리 부부는 큰 병원으로 가 진찰을 받고 초음파를 하고나니 글쎄 의사 선생님께서 쌍둥이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긴 하지만 임신중독에 얼마나 힘들까 하는아내를 생각하니 매일 매일 지나가는 시간이 가시밭길을 걷는 것 길을
한없는 삶만 한탄하면서 가슴을 조리야만 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7개월이 조금 넘어가는데 병원에서 임신중독이심하니 아이를 포기하지 않으면 산모도 위험 하다는 말에 그만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하늘마저 우리들 도와주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아이를 포기하고 산모만 살려주세요.의사 선생님께 부탁을 했습니다.그런데 조금 있으니 산모도 괜찮고 아이도 낳을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 자리에서 알 수 없는 마음에 앉아 있지 못하고 서성거리는데 자정이 넘은 시간 쌍둥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들어가려했지만 임신중독이라 여기서 조금 지켜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쌍둥이는 인큐베이터에서 키워야한다고 하는 겁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사랑하는 아내는 무사히 몸을 가누면서 내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지요 난 이름을 불러주면서 정말 수고했다는 말 해주고 손을 꼭 잡고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신생아실에 있는 우리 쌍둥이 딸 보러 갔는데 얼마나 작은지 차마 바라볼 수가 없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밖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아내는 퇴원을 하고 우리 부부는 매일 매일 힘든 직장 일에도 쌍둥이 딸을 보기위해 병원으로 가야 했으니까요. 하루라도 쌍둥이 딸을
보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까요.그런데 1994년 1월1일 아침 병원에서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쌍둥이 딸 중에서 큰딸이 이상하니 빨리 병원으로 와야 한다고 하기에 나와 아내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정신없이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니 글쎄 딸이 숨을 쉬지 않는 거예요. 선생님 왜 그런데요. 선생님 제발 살려주세요. 선생님. 몆 번이고
선생님께 부탁을 하고 하였지만 지금 사경을 헤메고 있다는 말에 아내와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오직 딸만 생각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희망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부모의 마음을 저버리고 부모의 멀굴
바라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나는 남자였기에 아내 옆에서 차마 울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흐르는 눈물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고 다짐했지요.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래 우리 부부 더 힘내자 더 사랑하면서 살아가자는 약속을 하며 2월 초가 되어 딸을 퇴원시켜 잘 키우면서 살아왔지요. 그런데 7개월 만에 낳아서 그런지 유치원 때나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나 남들 따라가지 못하고
자라온 너의 모습을 바라보니 안타까움이 밀려드는데 거기에 성격 또한 그 어떤 사람보다 예민하여 어떠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단다.
사춘기 시절에는 집을 나가 엄마 아빠가 경찰서에도 가고 동네며
친구들을 다 찾아다닌 것 기억나니
지금도 딸을 바라보면 내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엄마 아빠의 가습에 오래도록 깊이 가시가 박혀 있는 듯 하구나.
시간이 흐르고 10년 아니 20년이 흘러가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하는데 살아가는 동안 나와 똑같은 언니가 나 먼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슬프겠니
언니를 잃은 슬픔에 그 어떤 사람보다 힘들어하면서 살아온 것을
엄마 아빠는 알고 있단다.
딸아 너의 얼굴만 바라보아도 아직도 엄마 아빠의 마음에 남아있는
자식의 아련한 얼굴 똑바로 바라 볼 수가 없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슬픔 잊으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이란다. 딸아 미안하구나.엄마 아빠를 이해하고 앞으로의 삶 힘차고 용기를 내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얼굴에 슬픈 얼굴 이제 짖지말고 밝은 얼굴의 모습으로 살아가렵
사랑한다.

윤희씨 우리 부부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제주도에 갈 수 있다면??



댓글

()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