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짝사랑을 했고, 그 사랑은 상대의 결혼으로 정리가 됐습니다.
아무리 사랑 앓이 시간이 길다 하더라도 결혼 앞에서는 깨끗하게 정리가 되더군요. 마음이 허전하고 괴로울 줄 알았는데 크게 한 번 콕 박히도록 아프고는 생각보다 쉽게 괜찮아졌습니다. 다행이었죠.
그러던 제게 찾아온 다른 사람...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등학교 때 2년 동안이나 같은 반을 했던 친구를 우연히 보게 된 겁니다. 제 동생이 모 장학 재단 시험을 보게 되어, 마중을 나갔었는데 거기서 그 친구와 마주친 것이지요. 학창시절의 그 친구는 두리둥실한 외모에, 그에 걸맞은
둥근 성격, 바르고 성실한 아이여서 내심 좋은 아이구나 생각을 많이도 했었던 친구였어요.
그런데 우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무척 잘해서 명문대에 간 것은 알고 있었는데, 제 동생이 듣는 수업 중, 그 아이도 듣는 수업이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장학재단 시험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도 신기했는데, 그 많은 수업 중 제 동생과 같은 수업을 듣는 것이 있다니...
"누나, 나 그 형 봤어. 나랑 같은 수업 들어."
동생의 말에 가슴이 쿵쾅 뛰었습니다. 그 수업이 있는 날이면 동생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묻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오늘은 어땠어? 수업 열심히 듣더냐? 지각은 하지 않았고?"
동생을 핑계로 그 아이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 그래 반갑다. 네 동생 봤어, 키도 크고 되게 잘생겼더라. 너랑 비교되던데? 허허허!!!"
여전히 그 둥근 성격 그대로였어요. 그래서 더 저를 기분 좋게 한 그 아이와 만나고 싶었습니다.
약속을 잡고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려도 그 친구는 나오지 않더군요.
전화를 했더니 자던 목소리로 "아 참. 약속했었지? 그런데 어쩌니... 내가 깜빡하고 이제 일어났다...
미안하다." 라고 말하던 그 아이...
야속하고 속상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다른 날 약속을 잡았습니다. 역시,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은 늘 약자인 법이죠. 속상했지만 어떻게든 보려고 또 날을 잡은 저...
그 날은 친구가 제 시간에 나왔어요. 그러더니 옷 가게에 들어가는 겁니다.상기된 얼굴로 이 옷, 저 옷 입어보더니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라달라고 했어요. 그리고는 어떤 음식점이 좋냐며 물어보기도 했구요. 저는 여자임에도 쇼핑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 아이를 위해 몇 시간을 쇼핑하고, 기분 좋게 맛있는 것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황당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어요.
"내가 지금 짝사랑하는 애가 있는데 그 날 나한테 어울리는 옷 골라주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점 알려줘서 고마웠어. 그런데 말야, 내가 좋아하는 애한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연락은 그만 하자. 아무리 친구라도 또 보긴 좀 그래. "
이게 뭔 소린가 싶었어요.. 망치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지요. 왜 그러는건지 당황스러웠습니다.
어쩐지, 그 날 신나게 쇼핑하더라 했더니만, 어이가 없고 눈물이 났어요..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한테 몇 시간 기다리게 하고 약속 펑크를 내질 않나, 만나서는 그 짝사랑녀를 위한 사전 조사용으로 저를 이용해
먹지 않나... 고작 이게 만남의 전부였어요... 예의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가 과하게 나온 것도 아니고, 오래간만에 동창 친구 만나 밥 먹은 것 뿐인데 뭐가 부담이고, 왜 연락을 하라 말라 하는 건지...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길 좋아하고, 쉽게 사랑의 감정을 보이지 않는데다가
소심한 성격의 제가 뭘 어쨌다고... 밥 먹고 옷 골라준 것 가지고....
그리하여, 그 친구에게는 그나마 막 피어나려고 했던 핑크빛 기분이 한 순간에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너무 서운하고 기분 상하고, 아팠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마음에 두었던 친구였고 오래간만에 반가운 마음으로 보려고 했던 것 뿐인데 한참 앞선 왕자병 착각을 했던 그 친구가 미웠습니다.
에휴...짝사랑만 계속 해온 저는, 누가 뭐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이 좋습니다. 무조건 그렇게 생각하려구요. 그래야 제가 아프지 않을테니..
너무 아프면 그건 사랑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 해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예뻤던 날, 저는 이렇게도 무척 슬펐답니다..
신청곡-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게시판 성격 및 운영과 무관한 내용, 비방성 욕설이 포함된 경우 및
기명 사연을 도용한 경우 , 관리자 임의로 삭제 될 수 있습니다.
* 게시판 하단, 관리자만 확인할 수 있는 [개인정보 입력란]에
이름, 연락처, 주소 게재해주세요.
* 사연과 신청곡 게시판은 많은 청취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입니다.
사적인 대화창 형식의 게시글을 지양합니다

<그 가을 그 노래> 슬픈 가을의 기억
김남원
2013.09.09
조회 102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