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

음악FM 매일 22:0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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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28. <세상의 모든 책> (김민준 著 /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中 「보통의 날」)
전보현
2025.06.29
조회 28
보통의 날



참 이상한 날이 있다. 새벽부터 날이 어두컴컴한 것이 별다른 일도 없는데 마음에 몽실몽실해지는 날, 이른 잠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려놓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커피가 식어버렸다. 애매한 온도의 카페인을 한 모금 삼키는 중에 문자 메시지가 한 통 날아왔는데 언젠가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휴대폰 화면을 바라볼 뿐이었다. 텍스트 입력란에 커서가 깜빡깜빡, 이따금씩 희미한 기억을 환기시켜줄 때쯤, 비가 쏟아졌다. 공교롭게도 덕분에 나는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잘 지냈냐 말에, 너와 만나던 시간들이 정말로 꿈은 아니었구나 싶어 다행스럽고 서글펐다.

참 이상한 날, 이른 새벽에 눈을 떠서 다 식어버린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마치 비가 언제 쏟아질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때마침 날아온 문자 메시지와 그로 인해 내 안에 젖어들던 수많은 달고 시린 기억들. 사랑은 짧고 잊혀짐은 길다고 하였지. 당신의 부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더 마주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그리움이 되었을 때 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지난 시절들 속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깨닫곤 하였다. 지혜롭게 사랑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은 기억을 부둥켜안고 끊임없이 독백에 이르는 과정이었음을. 그 물음의 끝에서 언제나 길을 잃었지만, 잘 지냈냐는 말에 이렇게 몸도 마음도 일시정지 상태가 되는 것을 보니 나에게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기도 하고.

‘이제야 조금 괜찮은 것도 같아. 그래서 더 겁이나. 그 날의 우리를 떠올리게 하는 다채로운 흔적들이 나는 두려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결국 답장을 보냈다.

―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여전히 내게는 나의 안녕보다 너의 안부가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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