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받은 편지는 나에게 특별한 거울과도 같다.
나 몰래 친구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나의 성향, 선생님과 가족들이 바라보는 나의 특징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서른이 넘은 지금 누군가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물어보는 일은 쉽지 않다.
질문을 받은 상대가 자신이 느끼는 대로 진실을 말해주기도 어려울 것이다.
서로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따지고 포커페이스로 대한다. 싫은 사람 앞에서도 미소를 짓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일상의 풍경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변한 것은 성인이 된 후인 것 같다. 학창 시절엔 지금과 달랐다.
사춘기 무렵까지는 아예 감정 변화를 감추지 못했다. 기분 나쁘면 금세 미간을 찌푸리고,
즐거우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속마음을 완연히 드러내는 편지를 쓰는 일에도 거부감이 없었다.
누군가의 생일, 입학, 크리스마스 등과 같은 이벤트 혹은 방학 전, 싸웠을 때, 좋아할 때가 그랬고,
그렇게 내가 받은 편지를 상자 안에 차곡차곡 쌓아 장롱 깊숙이 보관했다.
모아놓은 편지 가운에 가장 빛나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주신 엽서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갓 부임한 20대 선생님은 국어 과목을 담당했다.
담임 선생님은 학업 성적이 뛰어나지도 않고 특별한 재능도 없던 내게 많은 관심을 주셨다.
"늘 성실하고 노력하는 현정이의 모습이 좋았어.
나중에 졸업해도 시간이 되면 선생님 집에 놀러 와.
계획을 잘 세우고, 인생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이 되길 바랄게."
그 시절의 나는 우등생도 아니었고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산만하고, 집중력이 없는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선생님이 써준 편지 속 내용은 달랐다.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게 고등학생이 되어서 나름 변신하고자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어쩌면 선생님은 내가 지금보다 좀더 모범적인 학생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바쁜 일정 속에서 자기 모습을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타인의 평가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애쓰지만, 예민해지는 순간도 분명 있다.
그럴 때 과거에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는 분명히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 안에 담긴 언어가 상처받은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잊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유현정의 <나의 종이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