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시장에서 살았던 나는 놀이터나 학원가 대신에 시장의 골목을 누비며 자랐다.
코가 시커먼 애들의 얼굴, 불 냄새, 시장에서 누군가 목이 터지게 외치는 배춧값, 고등엇값.
그 모든 풍경은 시장을 떠난 아이들과 아치형 지붕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지만,
내 기억 속 유년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은 빌딩을 보며 자라고,
어떤 사람은 푸른 대지를 보며 자란다는데, 나는 시장 바닥에 주저앉은 나무들을 보며 자랐다.
비가 오면 파란 비옷을 입고, 머리에 검은 비닐을 뒤집어쓰고,
폭염에는 분홍색 수건을 목에 두르고 땀을 닦고, 겨울에는 솜이 들어간 바지와 조끼를
몇 개씩 껴입는 나의 낮은 나무들. 오늘도 출근하는 길에 정수리를 드러낸 나무들을 봤다.
자다가 일어나 머리카락이 눌린 반찬 파는 이모의 정수리, 탱글탱글한 파마머리가
동서남북으로 뻗은 과일 파는 아줌마의 정수리.
나는 나무만큼 한자리를 오래 지킨 그 정수리 미인들의 옷차림을 보며 계절을 알아챈다.
솜이 들어간 바지, 목에 감은 스카프, 털실로 촘촘하게 짠 조끼.
지금 내 나무들의 손등과 볼과 입술이 허옇게 트고 있다.
시장을 떠나 살면서 나를 제일 가난하게 했던 말은 "엮이지 마"였다.
누군가를 만나 서로의 뿌리와 가지가 엉키는 일이 고통이나 불편이 되는 관계를 맺으며
나는 얼마나 약하고 외로운 사람이 되었는지... 다시 돌아와 사람과 '엮는 일’, ‘엮이는 일'을 배운다.
이곳에서는 우리의 얽힌 뿌리와 가지가, 어느 날 도끼 같은 불행이 우리를 내리쳤을 때
쉽게 잘려 나가지 않도록 서로를 지탱해주는 힘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지금 나는 이 시장에서 낮은 나무로 사는 법을 배우는 중이 아닐까.
익산시 중앙동 중앙시장. 이곳에는 꽃 같은 여자들 말고, 나무 같은 여자들이 산다.
장미처럼 입술을 빨갛게 칠해도, 철쭉처럼 진분홍 스카프를 둘러도 그들은
누군가의 기분에 쉽게 꺾이는 꽃이 아닌,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뽑히지 않는 나무다.
나를 키웠던 시장으로 다시 돌아와 매일 이 길을 걸으며 나무가 된 사람들의 삶을 책처럼 펼친다.
더듬더듬 읽다 보면, 그 삶을 글로 옮기는 날도 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내가 아는 이 나무들을 증언하고 싶다.
가지가 꺾이는 아픔을 겪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그 굽은 삶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
*신유진의 <상처 없는 계절>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