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127목 정성을 어찌 재료에 비기겠는가
그대아침
2025.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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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김장이 끝났다. 무농약 무비료로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썼다.
배추는 속이 잘 차서 통통했고, 무는 알맞게 자라 단맛이 뱄다.
고춧가루는 탄저병이 들기 전에 딴 초벌고추를 빻아 색깔이 진홍빛으로 곱다.
봄에 캐서 보관해둔 육쪽마늘도 여전히 여물었고 생강과 쪽파와 적갓도
김장에 쓸 만큼 넉넉하게 수확했다. 아내의 김장은 예사롭지 않다.
음식 공부를 꽤나 한 탓에 건성으로 담글 수는 없었고,
몇 년 전부터 우리 김장김치를 가져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어
최고의 맛을 내려고 애를 쓸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러는 사이 해는 기울고 아내는 절인 배추 포기처럼 지쳐 쓰러졌다. 
“욕봤네. 내년부터는 김장을 줄여야지.” 
새벽녘 아내의 기척에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내는 밤새 끙끙거렸다.
“겨울 나려면 그래도 김치를 담가야지.”
송장처럼 누웠던 아내가 장롱 쪽으로 돌아눕는다.
“첫차로 나가서 목욕탕 뜨건 물에 몸 풀고 한의원에 가봐.” 대화는 짧았다.
나이 들어 노동으로 지친 몸이 쉽게 풀리겠는가.
나이 든 노동에 또 사나흘 허리를 두드리면서 부항기에 몸을 맡겨야겠지.

화목보일러에 나무를 넣고 들어오는데 부엌 한쪽에 김치가 가득 찬 양푼이 보였다.
엊그제 김장을 도와주러 가서 받아온 이웃 집 김치였다. 
맛도 보지 않고 그대로 밀쳐두어 볼품없이 꺼실꺼실 말라 있었다.
저 김치를 어떻게 하나. 아, 순간 나는 저처럼 말라버린 내 감정이 거기 
양푼에 담겨 있음을 보았다. 재료만으로 김치가 얼마나 맛나겠는가. 
재료만으로 김치 맛이 좋게 난다면 세상에 맛있는 김치는 널렸을 것이다. 
굳이 우리 집 김치를 찾는 이도 없을 것이다.
초벌 고춧가루와 끝물 고춧가루의 차이가 어찌 사람의 정에 앞서겠는가. 
아내의 김치가 어찌 재료의 맛이겠는가.
아픈 몸을 끌면서도 배추밭에서부터 김칫독까지 쏟은 정성을 어찌 재료에 비기겠는가.
오늘 아침 밥상에 저 김치 양푼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꺼실꺼실 말라붙은 내 늙은 감정에 이웃 할머니의 삶을 얹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김석봉의 <뽐낼 것 없는 삶, 숨길 것 없는 삶>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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