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125화 몸은 당신이 당신을 사랑한 증거다
그대아침
202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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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용하다는 한의사를 소개받아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다.
내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였다. 그는 내게 시간 여유가 충분하냐고 물었다.
나는 별로 여유가 없었으나 그가 여유를 원하는 것 같아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그는 나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고,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그에게 몽땅 털어놓았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얘기했을까.
문득 나는 알았다. 그는 그저 열심히 묻기만 하고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얘기했을 뿐인데,
내가 내 몸을 전혀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걸. 몸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고
욕망이 시키는 대로 살아왔다는 걸. 

그 후로 나는 내 몸의 말을 들으려고 무척 애쓴다. 어떤 추억이나 습성이 원하는 음식일지라도
내 몸을 괴롭힌 적이 있다면 가급적 피하려고 애쓴다. 어떤 것은 시고 쓰고 먹기 고약해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몸의 말을 듣기 시작하자 차가웠던 손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배앓이도 사라졌다. 몸은 그 사람의 자서전이다. 뇌는 속이고 거짓말을 해도,
몸은 충직하게 그가 살아온 인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번에 또 이력서를 제출한 곳이 있다. 몇 개월에 걸쳐 오른팔에서 왼팔로 어떤 고통스런 퇴행이 일어났다.
근 5년간에 걸쳐 조금씩 진행된 무리한 도시농부 흉내의 부작용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침을 맞거나 뜸을 뜨거나 하는 처방으로 팔이 정상화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지인의 권유로 용하다는 경락마사지 집을 찾아가 몸을 맡겼다.
내 몸 이력서를 보더니 선생이 말했다.
“마음은 비우고 가슴은 열고 어깨의 힘은 빼고 목은 세우고 똑바로 앉고 바르게 걸으세요.” 

나는 그제야 연결 부품이 어긋나고 틈새가 벌어진 로봇 완구처럼 불량품이 돼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내는 삐거덕거리는 불협화음과 살려 달라는 절규를 나는 흘려들었던 것이다.
선생은 내 몸에 씌어진 이력서를 읽으면서 내게 나직하게 충고했다. 몸은 대나무와 같다.
안을 비워야 푸르고 단단해지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다. 몸은 당신이 당신을 사랑한 증거다.
당신에게 와서 헌신하고 애쓰고 있으니 당신이 위로해 주고 아껴줘라.

*림태주의 <그토록 붉은 사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