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희 동네엔 '그네 멀리 뛰기'가 인기였어요.
그네를 타던 중에 뛰어내려 누가 더 멀리 가는지 겨루는 놀이죠.
제가 주로 가던 집 앞 놀이터는 미끄럼틀이 그네를 가로막고 있는 구조였어요.
그네에서 뛰려고 할 때면 앞을 가로막은 미끄럼틀에 코를 박는 모습이 자꾸 떠올랐어요.
두려움이 발목을 잡았죠. 아무리 연습해도 미끄럼틀을 넘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놀이터를 평정하고 있던 4학년 형에게 도움을 구했어요. 그 형은 한 마리 새였거든요.
그네에서 어찌나 가볍고 우아하게 뛰는지, 미끄럼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허공을 지나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곤 했어요.
“눈 딱 감고 뛰뿌라!”
비법을 물어본 제게 형이 해 준 조언은 이게 다였어요.
하루는 작정하고 계속 그네를 탔어요. 될 때까지 뛰어 볼 참이었어요.
손바닥엔 물집이 잡히고, 착지할 때마다 모래가 튀어 옷이 엉망이 됐어요.
몇 번을 뛰어도 안 되더라고요. 정말 마지막이란 각오로 그네 판에 발을 디디며 자리를 잡는데,
뭔가 느낌이 달랐어요. 눈 딱 감고 뛰라는 형의 조언을 되새기며 발을 굴렀어요.
단숨에 제가 할 수 있는 최고 높이까지 그네를 밀어 올렸어요. 그리고 점프.
드디어 미끄럼틀을 뛰어넘은 거예요. 제가 해 놓고도 믿을 수가 없어 다시 그네를 타고 뛰어 봤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미끄럼틀을 넘는 게 정말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도대체 지금까지 이걸 왜 못 했을까 의문이 들 만큼 쉬웠어요. 기쁨이 벅차올라 뛰고 또 뛰었죠.
전 미끄럼틀이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멀리멀리 날았어요.
언젠가 '창작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저는 '결코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걸 넘어 본 경험'이라 대답했죠.
두려워하지 말자, 스스로 만든 한계에 갇히지 말자, 그러니 눈 딱 감고 해치워 버리자.
만약 그날의 점프가 없었더라면, 전 결코 2단 줄넘기를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인수분해 앞에서 수학을 포기하고 말았을 거고,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게 해 준 작업실을
열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러면 결국 그림책 세상에 들어올 일도 없었겠죠.
사실 여전히 제 앞에는 넘어야 할 것들이 산재해 있어요. 책상에 놓인 원고와 계획표를 훑어봐요.
이번 미끄럼틀은 어떻게 넘어가야 할지 벌써부터 고민이에요. 그래도 즐겁게 해 보려고요.
언제 두려웠냐는 듯 멀리멀리 날아갈 날을 기다리면서요.
*정진호의 <꿈의 근육>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