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103월 권태로움을 자유로 받아들일 때, 또 다른 행복이 올지도
그대아침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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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는 '어떤 상태에 시들해져 싫증을 느끼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인해
찾아와서는 안 될 두려운 손님으로 치부되곤 한다.
신학기가 되어 처음 등교를 하는 학생이나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부부에게
권태가 찾아오는 일은 드물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긴장과 낯섦은 권태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같은 생활이 반복되고, 특별한 자극없이 그 일상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권태에 빠지게 된다. 말하자면 권태는 즐거움이 없어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극없는 단순함이 반복되어 느끼는 것이다.
어찌 보면 권태는 자꾸만 극단으로 치달아 버리는 자극에 대한 욕구에 
한 번씩 제동을 걸어 잠시 쉬어가게 하는 휴식처의 역할을 한다.
일상에서 때때로 찾아오는 권태를 감내하고 무위의 시간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알베르 까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는 형벌로써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리고,
다시 굴러 떨어진 바위를 올리는 무의미한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까뮈는 산에서 내려와 다시 바위를 굴려야 하는 시지프를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여 자유를 찾은 존재로 해석했다.
그런 해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아, 시지프와 같이 하루하루 똑같은 노동을 반복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 사는 인간으로서의 내 삶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얼핏 보면 무의미하며 지루하게 느껴지는 단순함의 연속이지만,
어차피 영원히 반복해야 할 삶으로서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굴러 떨어진 바위를 따라 함께 걸어 내려가는 길에 솔솔 불어오는 미풍을 맞으며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쉼의 기쁨을 만끽하고 휘파람 불며, 
마치 산책하듯 내리막을 걷는 그 순간을 만끽할지도 모른다. 
그 순간이 지닌 진정한 맛을 깨닫고 나면, 걸어 내려가는 내리막길은
수많은 사유를 할 수 있는 '철학의 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반복을 허망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른한 휴식으로 권태를 받아들였을 때 느끼는 자유함은
아마 내리막을 걸을 때 시지프가 느꼈을 행복과 같지 않을까.


*고명한의 <어느날 중년이라는 청구서가 날아왔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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