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저녁이면,
가을이면, 연말이면 '그때 그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하는데', '그 일은 차라리 맡지 말걸'
이라는 후회를 달고 사는 나는, 사실 '후회 없는 삶'이라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할 것임을 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 작가는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았구나,
적어도 후회 때문에 삶을 저당 잡히지 않았구나' 하는 부러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읽을 때,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읽을 때,
루쉰의 여러 산문집을 읽을 때, 나는 '이 작가들은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구나' 하는 감동에 휩싸인다. 최근에는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으며 그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 그것도 사랑뿐이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이 책은 철학자 김진영이 암 선고를 받고 1년 후 세상을 떠나기 3일 전까지 쓴
일기를 모은 것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일기가 아닌 사랑에 대한 철학서이며
삶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담은 에세이이기도 하다. 그는 암 선고를 받고도
차분히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글을 쓴다.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신은 암에 걸렸습니다'라는 선고를 받고도 이토록 초연함을 지켜내는
철학자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그는 슬픔보다 더 소중한 것, 슬픔보다
더 강인한 것을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어떤 고통의 순간 앞에서도 오직 사랑할 권리를 잃지 않는 것, 한 사람에 대한
사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랑받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
눈에 보이지 않거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모든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아직 사랑할 권리가 있으니까. 아직 사랑할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의 문장들을 읽고 쓰다듬고 껴안을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월간 정여울의 <두근두근, 반짝이는 설렘을 간직한다는 것>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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