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 많고 직선으로 질주하는 KTX보다는 포물선을 그려가며 산을 돌고
전답을 누비는 보통열차의 리듬이 생각 잠기는 데 안성맞춤이다.
나이 들고 보니 객차 안의 혼잡이 오히려 안락의자처럼 육체와 정신을 지탱해준다.
아이들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되도록 KTX를 탄다는 친구도 있지만
내게는 그 소리 역시 자장가로 들린다.
오늘도 객실 이곳저곳에선 아이들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고,
울음소리를 멎게 하려고 엄마가 등에 업고 서성거리며 달래는 소리도 들려오고,
짜증 내는 손님의 고함도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이런 북적거림 속에 이렇게 느긋한 안정감이 자리하고 있다니......
사고와 혼잡은 뭔가 비슷한 데가 있는 것도 같다. 부유하는 소우주,
그 속에서 숱한 혼들이 서로를 혼불로 불사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또는 말 없는 가운데 적의로 무장하고, 그 때문에
지치다 못해 언짢아하는가 하면, 체념하면서 기다림으로 표류하기도 한다.
혼란의 소용돌이, 무질서와 질서의 호의와 악의의, 기대와 불안의 체념과 초조의 미묘한 버무림!
멈춰버리면 만사가 끝이라는 듯 쉼 없이 달린다. 나만은 소중한 목적을 알고 있다는 듯
일체를 뒤로, 뒤로 제치고 던지며 달리는 이 맹목적인 운동은 뭔가와 닮은 데가 있다.
혼잡하고, 모순되고, 폐쇄적인, 때로는 브레이크를 걸어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는, 숱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하나의 궤도에 어쩔 수 없이 실린채 그 어디론가 가고 있는 내 인생.
측량키 어려운 혼란과 질서를 싣고 온갖 운명을 눈에 보이지 않는 필연의 끈으로 꿰어
언젠가는 다가올 종국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세상, 그 흐름, 그 떠돎......
기차는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전규태의 <단테처럼 여행하기>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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