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도복싱→ 메서드→ 스파링→ 시합'
내가 다닌 체육관에서 권장하는 기량을 올리는 단계다. 아마 다른 복싱 체육관도 비슷할 테다.
'섀도복싱'은 상대를 가정한 후 거울을 보고 혼자 하는 훈련이다. 기본적인 동작과 기술을 익힌다.
'메서드'는 실제 상대와 치고받지만 서로의 약속하천천히 그리고 약한 강도로 진행하는 훈련이다.
섀도복싱을 통해 익힌 동작과 기술을 상대에게 사용해 보는 것이다. 메서드가 익숙해지면 스파링을 한다.
'스파링'은 보호 장구를 갖춘 상태에서 실제 시합처럼 치고받는 훈련이다. 그리고 '시합'은 실전이다.
섀도복싱의 핵심은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다.
실제로는 내 눈앞에 없지만, 마치 내 앞에 실재하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이 능력이 있어야 섀도복싱을 진정으로 잘할 수 있다.
'어떻게 보일까?'를 떨쳐내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오롯이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허영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 실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복싱에서 실전이 스파링이나 시합이라면, 삶에서 실전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에 따른 선택과 실천이다.
자신은 용기 있고 도전 정신 넘치는 사람이라고 백날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
스파링이나 시합을 피하고 있다면 그가 말한 용기와 도전 정신은 허영이다.
입으로만 백날 사표를 쓰고 자신의 사업을 할 거라 외치는 월급쟁이의 용기와 도전 정신은 허영이다.
스파링과 시합이라는 실전이 주는 절박함을 경험하고 난 이후에도
허영에 가득 찬 섀도복싱을 할 수는 없다. 삶도 마찬가지다.
각자에게 주어진, 절실하고 절박한 선택과 그에 따른 실천 앞에서 허영은 더 이상 자리 잡을 곳이 없다.
복싱으로 삶을 돌아본다. 행복을 날조하고, 그 날조된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허영을 부리며 살아가고 있던가. 날조된 행복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것이 링에서도 삶에서도 더 이상 실전을 피하며 살고 싶지 않은 이유다.
때로 아프고 절망스러울지라도 내가 얼마나 허접한 인간인지 직면하며 살고 싶다.
그래서 끝내는 '나는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진짜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나는 복싱이 좋다.
복싱은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그 뿌리 깊은 허영을 단박에 걷어 주니까.
*황진규의 <세상이 나를 몰아세울 때? 가드를 올리고 도망치지 말 것!>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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