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917수 돌봄을 빙자한 과잉이 자생력을 해칠 수도
그대아침
2025.09.17
조회 136
세 아이를 서로 다른 환경에서 키웠다. 고향에서 두 딸은 시오리길을 걸어 학교에 가고
봄, 가을에는 농촌 동원이라는 이름의 농사일도 해야 했다.
그래도 기죽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다. 남부럽지 않게 키울 자신도 있었다.
아들의 교육 환경은 그때와 비할 수 없이 좋다. 학교는 집 앞 큰 길을 건너면 된다.
아이의 발달을 위한 청소년 수련관, 체험관, 상담실 등 수많은 기관이 있다.
그러기에 한편으로 아들의 양육이 더 부담된다. 너무 많은 선택 앞에서 움츠러든다.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해 학원에 보낸다.
좋은 환경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사무실 한쪽에 테이블야자가 있다. 이제 한자리에 놓인 지 8년이 되어 간다.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한다. 해마다 가느다란 대가 생기고 잎이 펴지며 식구를 늘여간다.
더위에도 추위에도 살아남아 풍성해졌다.
친구들이 개업 축하로 보내온 난이 시들고 뒤에 배경으로 서 있던 몇 뿌리가 
마음에 걸려 모아 심었다. 한두 해가 지나자 작은 공간에 잎이 겹쳐 촘촘히 있는 모습이
좀 더 큰 집을 바라는 것 같다. 큰 화분으로 옮기자 잎은 한껏 자리를 넓혀 갔다.
사철 푸른빛의 생기가 꿋꿋한 우리네 모습 같아 좋다. 
키가 자란 테이블야자는 지금은 온전히 화분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생이별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견디고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디딘 딸들은 
테이블야자와 닮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서려고 애쓴다.
진로를 고민하고 대학 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 싫다고 투정도 한다.
때로는 일기장에 쓴 글을 읽고 마음이 아프지만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세상에 적응하러 서로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두 딸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 분야에서 일한다.
잘 자라준 아이들이 한없이 고맙다.

화분이 내게 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모든 생명에게 지나친 도움은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자연이 주는 햇볕과 최소한의 물만으로도
꽃은 피고 열매를 남기며 울퉁불퉁 나이테를 새긴다.
보호를 빙자한 과잉 친절과 돌봄이 오히려 자생력을 해치고 생명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척박한 환경일지라도 생명은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터득한다.
아들에게 보호가 아닌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고 응원이 필요한 이유이다.

*허옥희의 <엄마의 이별방정식>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