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거기가 아니고
내일 저기도 아니고 다만 오늘 여기
그리고 당신
-나태주의 <행복>
결혼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내 성공과 명예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한 번도 생각지 못한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올 때면,
‘삶은 여기 있구나’ 깨닫는다. 모처럼 미세 먼지가 없는 날 유치원을 다녀온 둘째에게 물었다.
“은산아, 오늘 밖에 나가서 신나게 놀았어?”
둘째가 고개를 저었다. “음, 오늘 미세 먼지도 없었는데 왜 안 나갔어?”
둘째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구름이 너무 낡아서 못 나갔어.”
‘네가 있어 낡은 구름을 보는구나’ 생각했다. 늘 거기 있던 시간,
저기 있을 시간만 쫓으며 살았던 나에게 아이가 말한다.
여기를 보라고, 여기 행복이 있다고.
나는 지난 몇 달 ‘오늘 여기’를 살지 못했다. 책 한 권을 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버려야 하는 글도 많았고, 그만큼 새로 써야 했다. 글은 무척 더디게 좋아졌다.
나는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둘째가 자신도 글을 쓰겠다고 내 무릎에 올라오자
첫째가 “은산아, 누나랑 비눗방울 놀이 하자”라며 밖으로 나갔다.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째가 “엄마, 선물할게 있어”라며 나를 불렀다.
귀찮은 마음에 “이따 볼게”라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데, 아이가 계속 문을 두드렸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아이 손에 붉은 하트 모양 낙엽이 들려 있었다. “엄마를 사랑해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 가을이 왔구나.’
태어나 이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늘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무언가 해야 한다고, 여기서 내 인생이 끝나서는 안 된다고.
마치 빠르게 질주하는 말을 탄 듯 세상은 어지러웠다. 두 아이 덕분에 말에서 내렸다.
무심코 지나친 잡초가 피운 꽃을 이제 본다.
‘오늘 여기’의 삶이 나쁘지 않다. 요즘 내 감정을 살피는 두 아이를 보면 ‘많이 컸구나’ 생각이 든다.
“지금이 좋을 때야”라는 어른들 말이 문득 내 것 같다.
이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남은 가을을 보러 가야겠다.
*윤혜린의 <엄마의 책장>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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