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서고, 아무 때고 춤추기를 잘한다. 그런데 유독 그것이 잘 안 되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이다. 모이면 춤추고 노래하던 3000년의 전통이 있다고
중국 역사책에 기록되기까지 했던 우리나라인데,
언제부터 이렇게 굳게 무장된 의식이 지배하게 되었을까?
한국에 돌아오면 나도 어느새 그런 환경에 지배를 받고 굳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아직 나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구나' 하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젊은이들에게선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곤 하지만,
그들의 춤 역시 어느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다.
몸을 구속하는 무거운 공기에 나는 답답해진다.
자연 속으로 돌아오면 나의 몸은 다시 그런 무거운 공기로부터 해방된다.
미국 동부에 마서즈 빈야드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다. 특히 밤의 파도 소리가 유난했다.
밤에 모래밭을 거닐 때, 또는 눕거나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아무것도 아닌 내 존재가 느껴지곤 했다. 흡사 찰나의 파도 소리와 같이
금방 일었다 이내 사라지는 아무것도 아닌 내 존재에 대해 밤이면
늘 생각을 했다. 그리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들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서즈 빈야드에서처럼 이곳 빅 아일랜드에서도 나는 모든 것을 벗어 놓는다.
그리고 언제고 일어서서 저 파도 소리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다.
여기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곳에선 탄생과 죽음이 다 눈앞에 보인다.
생명이 끓어 넘치고 있으며, 또 그것의 죽음이 있다. 검게 굳은 용암, 그리고
한쪽에선 새로이 일어나는 화산.
해변의 한쪽 끝으로 가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수십 미터의 거대한 수증기 기둥을
볼 수 있다. 땅끝이 토해 놓는 뜨거운 용암과 차디찬 바닷물이 만나면서 이루어진
거대한 수증기 기둥이 언제나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가까이 다가가면 쉭쉭거리는 대지의 흥분과 안개처럼 흩어지는
바다의 거친 호흡을 느끼게 된다.
다시 보름달이 솟는 밤, 그곳에 가서 밤을 보내고 싶다.
그곳에 가서 검은 모래를 밟으며 춤추고 노래하고 싶다.
나는 많은 무대에 섰었지만, 나의 마지막 무대는 결국 자연이 아니겠는가.
*홍신자의 <자유를 위한 변명>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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